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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른 전에 결혼해야지” 생각 뒤엔 ‘섹스 자본’의 그림자

등록 2013-06-30 20:40수정 2013-08-08 10:09

한 주를 여는 생각
감정 불평등에 눈물짓고 자본화 코드에 멍이 들다

사랑은 왜 아픈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3만원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는지, 사랑만 주다 다친 내 가슴 어떡해.” 최근 각종 음원차트 1위를 휩쓴 여성 4인조 그룹 ‘씨스타’의 노래 ‘기브 잇 투 미’의 첫 소절이다. “아무리 원하고 애원해도 눈물로 채워진 빈자리”에 여성 화자는 “사랑을 달라”며 운다. 2013년 한국의 대중은 ‘서른 전의 결혼’ 생각에 불안해하고 사랑에 운다는 내용의 노래를 열렬히 소비한다. 이 노래를 부른 여성 가수들은 ‘섹시함’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우연일까?

“섹시한 여자(남자)가 좋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결혼 연령도 늦어졌으며 출산율도 낮아진 시대다. 자유가 늘어나고 억압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아프다’고 하는가. 이것이 ‘나만의 문제’라면 저 노래는 어떻게 알고 꼭 내 마음 같은 얘기를 읊조리나.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교수인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사랑은 개인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지금 당신의 마음을 곪아 터지게 만드는 고통을 사회학을 통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우리가 축복으로 느껴왔던 자유, 특히 성적인 자유가 남녀 사이의 감정 불평등을 낳았으며 이로써 사랑이 더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성적 매력, 즉 ‘섹시함’은 현대 ‘결혼 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했다. 배우자나 파트너를 선택하는 데 있어 성적 매력이 주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섹시함’은 신분 상승의 조건이 됐다. 이 사실은 남녀 모두 ‘선택의 방식’을 바꾸게 했고 결과적으로 여성이 남성의 감정에 휘둘리도록 만들었다고 책은 지적한다.

몸을 섹스 중심으로 보는 강력한 상업화는 여성이 나이듦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학력과 경제력 등에서 자신보다 나은 남성을 선택하고자 했던 여성들은 새로운 기준인 ‘섹시함’으로 인해 더 심한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결혼 시장에 선행해 섹스 시장이 열렸고 남성들은 아예 섹스 시장에만 머무르려 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은 늦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압도적 다수의 중산층 여성이 아이 낳기를 희망하면서 여성은 초조하게 ‘서른이 되기 전에’ 남성에게 ‘약속’을 기대하고 남성은 그 앞에 주춤거린다. 선택 가능성의 과잉과 섹스의 상품화는 사랑의 열정을 식게 했고 사람들은 관계의 불확실함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한겨레> 사진마을 열린사진가 이기현 제공
사진 <한겨레> 사진마을 열린사진가 이기현 제공

‘섹스 자본’이 갈라놓은 남녀의 감정 불평등

왜 오늘도 나는, 당신은 사랑에 아파하는가. 왜 여성들은 30대에 들어서면 자신을 묶어줄 상대를 찾아 초조해지는가.
에바 일루즈는 이런 감정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며, ‘섹시함’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이 남녀의 감정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에바 일루즈는 자본이 감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분석한 <감정 자본주의>를 썼던 사회학자다. 여성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학이 현대사회에 의미있는 도구로 남고자 한다면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자아의 ‘감정’ 문제를 절박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그는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사랑이 주는 고통의 현대성에 주목하며 소설과 각종 칼럼, 인터뷰 등을 분석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대중적 학술서’는 ‘중산층에 속하는 결혼’을 결심하는 여성의 관점으로 사랑을 관찰했다.

그동안 대중은 “사랑은 개인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한편에서 시장은 엄청난 이득을 취해왔다. ‘개인의 책임’이 무한정 강조되는 시대에 고통으로 점철된 사랑의 체험은 ‘힐링’ 열풍을 몰고 왔고 출판, 방송 등 미디어 업계의 추동력이 되었다. 사람들은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결함을 찾거나 자기반성에 빠졌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랑받지 못한다거나 버림을 받았다거나 거리를 두는 상대방의 태도로 아파하는 ‘감정적 고통’은 결정적으로 현대의 주요 제도와 가치가 빚어놓은 결과”라고 말한다.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지극히 은밀한 속삭임이 실은 사회라는 커다란 수레바퀴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며 여기에는 ‘특별히 현대적인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은 특히 페미니즘이 성의 해방이라고 찬사한 “섹스의 자유”가 실은 남녀 사이에 있어 감정 불평등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성적 쾌락은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평등함을 누리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라고 주장한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지은이는 그 안에 분명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감정적 고통’은 결정적으로
현대의 제도와 가치가 빚은 결과다
사랑의 약속을 원하는 여성은
남성에게 기대하고 실망한다
남성의 감정에 따라
여성의 감성이 종속되어 흔들린다
불확실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게
오늘날의 사랑이다

우선 여성들은 시간에 쫓기게 됐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들은 결혼과 임신을 미루고 있다. 오늘날 여성은 20세기에 비해 훨씬 더 늦게 결혼시장을 찾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애 여성의 압도적 다수가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중산층 여인의 시간은 ‘임신 가능성’의 시한으로 똑딱인다.

‘섹시함’과 갈수록 엄격해지는 미의 기준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젊음’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아졌으며 그 결과 특히 여성들이 나이먹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다.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여성들은 30대와 40대에 들어서면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다며 좀더 빨리 한 남자에게 자신을 묶어야 한다고 초조해한다. 강요된 초조함이다. 헬렌 필딩의 소설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의 30대 초반 여주인공은 “30대로 넘어가는 여인은 초조해하기 시작하며 홀로 외로이 죽어 3주 뒤에 셰퍼드가 반쯤 먹어치운 채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씨름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자신과 같거나 높은 교육수준과 재산 정도를 가진 남자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수입이 높아졌으니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자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육수준이나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새로운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등극한 ‘섹시함’으로 인해 더 많은 경쟁자가 등장했다. 초조해진 여성들은 화장을 하고 옷을 사 입으며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반면 남성은 ‘섹시함’이란 새로운 기준의 등장으로 더 폭넓게 상대를 고를 수 있게 됐다.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없다”고 한숨 쉴 때 비슷한 또래의 중산층 남성이 젊은 아내를 맞이하는 풍경은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특히 중상위층 남자들이 섹스영역을 지배하면서 ‘섹스 자본’을 축적하며 여성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일을 예전보다 꺼리고 더 오랜 시간 짝 찾는 일을 즐기게 됐다.

시간의 압박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사랑의 ‘약속’에 매달리게 된 상황에서 남성들은 갈수록 머뭇거린다. 결혼이나 약속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마음은 ‘쾌락에 물든’ 태도나 ‘의지가 없는’ 태도로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섹스와 결혼이 분리되면서 결혼 시장에 선행한 섹스 시장이 성립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예 섹스 시장에만 머물길 원하기도 한다. 대중매체는 ‘섹시함’의 기준을 구체화해 우리 앞에 들이밀고 이는 끝없는 소비를 촉진한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 불평등이 형성된다. 선택할 섹스 상대가 넘쳐나고 텔레비전만 켜면 섹시함으로 무장한 이들이 손짓하는 세상에서 사랑은 “끊임없이 새것으로 바꾸기 욕구”와 같은 소비행태로 나타난다. 반대로 선택의 홍수 속에서 관계맺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사랑의 약속을 원하는 여성은 끊임없이 남성에게 기대하고 실망한다. 이 과정에서 남성의 감정에 따라 여성의 감성이 종속되어 흔들린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불확실함과 불안이다.

책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화성과 금성’을 언급하며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찾는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랑을 통해 자기 존재의 확실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괴로워한다. 불확실성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것이 오늘날의 사랑이라고 책은 말한다. 고도로 상품화한 섹스의 자유는 모든 것을 포용하며 집중적 감정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의 능력에 결정적 손상을 입혔다.

이성애 부부의 ‘가정’이라는 틀로 유지되는 사회가 끊임없이 불평등을 빚어내는 한 섹스의 자유는 여성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책은 주장한다. 지은이는 섹스 자체를 권력으로 휘두르는 ‘섹스자본의 축적’이라는 문제를 더 철저히 파헤치고 남성성과 열정적 사랑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하나되는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은이는 현대의 감정과 사랑과 낭만이 기묘할 정도로 차갑게 식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오히려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자존감을 결정짓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때문에 지은이는 섹스와 감정의 관계에서 윤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책의 말미에 지은이는 이 냉철한 책이 당신이 겪고 있는 사랑의 아픔을 줄여줄 수 있길 바란다고 적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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