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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검은돈 세탁소 스위스 은행의 비밀

등록 2013-07-07 20:09수정 2013-07-08 10:44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1만2800원
이 책은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 당시 스위스 사회민주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 신분이었던 장 지글러는 책의 내용이 공개된 뒤 의원 면책특권을 박탈당했고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스위스 은행 패거리’가 주도한 다섯 개 나라 아홉 건의 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은행 신뢰도를 훼손시킨 손해배상으로 수백만 스위스프랑(1스위스프랑=한화 1200원가량)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도 책 내용의 오류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조세회피 자금 국가가 비호
금융위기 뒤 더욱 강력해져
시민의 봉기만이 부패 차단

장 지글러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자랐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의 조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23년 전 책 서두에 분명히 적었다. “지구상에서 스위스는 오늘날 죽음의 검은 돈을 세탁하고 재활용하는 요충지로 부상했다.” 세월이 지나 2013년 한국판을 내며 그는 서두에 추가했다. “스위스는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조세 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역외 재산, 곧 원래 형성된 곳이 아닌 곳에서 관리되는 재산의 3분의 1 이상을 스위스 은행들이 관리하고 있다. 스위스 프랑화는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부자들에게 가장 힘있고 안전한 통화다. 이 천문학적인 부의 원천을 살펴보자. 첫째, 선진 산업국가, 특히 유럽과 북미의 탈세 자본, 둘째, 세계적인 범죄조직 카르텔이 벌어들인 수입을 세탁한 금융상품, 마지막으로 제3세계 독재자들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의 부패성 자금을 꼽을 수 있다.

스위스의 은행 비밀법은 1934년 11월8일에 만들어졌다. 국가 법령의 뒷받침을 받아 막대한 금과 외화, 각종 유가증권들이 스위스 은행 금고를 알리바바 동굴 삼아 쌓여갔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 은행가들의 과묵함과 높은 효율성, 부도덕성, 일에 대한 열정이 가히 전설적이라고 조롱했다. 책 속에는 무기력하거나 범죄자들과 공모하는 판사, 눈먼 장님인 경찰, 수상쩍은 행동을 거듭하는 검사, 비굴한 공무원들이 득실거린다. 겸직이 허용된 스위스에서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선출 직후부터 대형 은행이나 금융회사, 보험회사 등의 영입 제안을 받는다.

마약 밀거래로 쌓아올린 돈조차 스위스 은행을 통해 세련된 기법으로 여러 금융 상품에 재투자된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파나마, 버뮤다 등의 조세회피처까지 뒤지자 마약업계 대부들이 스위스로 몰렸다. 미국이라면 1만달러 이상을 들고 은행을 찾는 사람은 그 돈의 출처에 하자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자유다. 돈세탁을 막을 수 없다.

이렇게 모인 돈의 ‘규모’는 다시 스위스 은행의 ‘힘’이 된다. 유엔 제재위원회가 1989년에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스위스 은행들이 제공하는 대대적이며 끊임없이 갱신되는 대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적 독재자들에게 ‘소중한 산소호흡기’ 구실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검은돈이 상층의 권력이 되고 거대 은행은 오히려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으며 국가가 복지를 줄이는 상황에서 “기아로 목숨을 잃는 아이는 살해당하는 것”이라고 책은 주장한다.

2008년 전세계적인 금융 재앙이 일어나자 거의 모든 선진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확산에 따라 손도 못 대던 금융계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조차 스위스는 예외였다. 당시 스위스 1위 은행인 유비에스(UBS)의 실세들은 자신의 옛 부하 직원이었던 재무장관을 만나 아무런 조건 없는 현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엄청난 적자에도 스위스 은행 간부들은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다. 책은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스위스 은행이라는 소수 집단은 한층 더 뻔뻔하고 강력해졌다”고 적었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는 항거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민들의 도덕적 힘, 분노하는 역량,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은 하늘을 향해 ‘거부’의 불길을 쏘아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의식의 분출은 ‘스위스 은행’이라는 치명적인 시스템을 대번에 쓸어버릴 것이라 예언한다.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이수영 오씨아이(OCI) 회장 부부,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부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 조욱래 디에스디엘(DSDL) 회장 부자 등 한국의 정·재계 권력자들이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사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항거가 불가능한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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