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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작품보다 하루키에 열광하는 이유?
“동어반복, 허세” VS “뛰어난 작가”

등록 2013-07-11 15:29수정 2013-07-11 15:53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가 판매를 시작한 7월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독자들이 줄지어 책을 구입하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가 판매를 시작한 7월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독자들이 줄지어 책을 구입하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신작 ‘색채가 없는…’ 베스트셀러
▷ <한겨레 21> 다른 기사 보기

화제의 소설이 출간되기 전 화제의 리뷰가 먼저 있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저는 무라카미 작품에 있어 좋은 독자는 아닙니다. <상실의 시대>도 도중에 읽다가 그만두었고, <어둠의 저편>도 도중 퇴장, 제대로 읽은 것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라는 단편집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정도, <1973년의 핀볼>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일어나니까 침대에 귀여운 쌍둥이 여자가 있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시점에서 책을 바닥에 내팽개쳤습니다. …본 작품의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가 어떤가 하면 아니나 다를까, 고독합니다. … 하지만 고독에 대해 일일이 소란스럽게 말하는 것이 옥에 티입니다. ‘어두운 심연이 지구의 중심까지 이어져 있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깊잖아. ‘소용돌이치는 허무’라든가 ‘깊은 침묵’이라든가 ‘생의 결함’이라든가 고독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사춘기에 몸부림치는 중학생의 블로그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라 오징어 냄새가 납니다. 깊은 침묵이 들린다니,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점 읽어나가는 동안 ‘아, 이건 우리들과는 다르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언제나의 무라카미 하루키 색깔이 작렬합니다.”

 

무라카미 류가 쓴 별 하나짜리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7월1일 한국어판이 출간되기 전인 4월12일 일본에서 먼저 발간됐다.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를 기해 이벤트처럼 책 판매가 이뤄졌는데, 도쿄 시내 서점 앞에서는 한밤에 독자들이 긴 행렬을 만들며 다시 하루키 붐을 예고했다. 주요 서점에는 <색채가 없는…>만을 위한 코너가 따로 마련됐고, 소설에 인용된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음반은 가게 한켠에서 잠자코 있다가 불현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문제의 리뷰는 이런 소란의 와중에 지난 5월3일 일본 온라인 상점 ‘아마존 재팬’에 올라왔다. ‘도리’(ドリ-)라는 필명의 독자는 별 5개 만점에 별 1개를 주고 ‘고독한 샐러리맨 오징어 냄새 나는 망상 소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7월4일 현재 이 후기는 2만2129명에게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진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개인적 감상에 가깝다. ‘하루키 월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지만 그렇다고 신랄한 문학적 폄하는 아니어서 그런지 후기에 남겨진 댓글들을 보면 오히려 책을 읽고 싶다는 반응이 많다. “문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거꾸로 읽고 싶어졌다.”(oh) “내가 품었던 무라카미 작품에 대한 위화감이 ‘오징어 냄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1991) “별 하나인데 이만큼이나 책이 읽고 싶어지는 서평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훌륭하다.”(desperado15) “이 녀석 절대 하루키를 좋아하겠지.”(타로) “멋진 서평, 일본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 너 혹시, 무라카미 류?”(jamira kowai)

후기는 한국어판 소설이 출간되기 전부터 번역돼 국내 인터넷 사이트를 떠돌았다. 3년 만에 출간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 소식에 촉수를 세우고 있던 이들이 되레 부지런히 안티 리뷰를 퍼날랐다. <색채가 없는…> 한국어판이 출간되던 7월1일 서울 종로 교보문고에는 석 달 전 일본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단 32권이 마련된 무라카미 하루키 사인본 <색채가 없는…>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인터넷서점 YES24에 따르면 책은 7월 첫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출간과 동시에 1위에 올랐다. 한국의 독자들 또한 ‘하루키 스타일’이 불편하다는 리뷰에 공감하면서도 하루키 신드롬에 기꺼이 동참한다. 우리는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하루키처럼 살고 싶다 vs 질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작품이 어떠했느냐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나요?’라고 물을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어온 회사원 ㅅ(40)씨는 “달리기(마라톤), 와인, 맥주, 유럽, 여행, 팝과 고전음악 같은 요소들이 떠오른다. 실제 하루키가 그렇게 살고 있어 하루키 소설을 뒷받침하는 알리바이가 되는 셈이니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를 읽는달까, 뭐 그런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ㅅ씨는 사람들이, 그리고 자신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는 이유로 “라이프스타일, 하루키(소설)처럼 살고 싶다는 심리”를 꼽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타인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꾸준하고 진지하게 추구해나가는 인물을 읽다가, ㅅ씨는 “운동하기 싫은 어느 밤, 하루키 소설의 정진하는 꼬마 캐릭터를 떠올리며 한 걸음 뗀 적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번 소설 <색채가 없는…>에서의 이런 문장이 설명하는 태도다. “쓰쿠루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며 25m 수영장을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페이스로 왕복했다.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붐 은 로부터 출발했다. 2011년 개봉한 동명 영화 에도 1990년대 한 국 독자 들의 마 음을 흔 든 청춘의 불안과 허무 등 휘청이는 감정이 고여 있다.한겨레 김태형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붐 은 로부터 출발했다. 2011년 개봉한 동명 영화 에도 1990년대 한 국 독자 들의 마 음을 흔 든 청춘의 불안과 허무 등 휘청이는 감정이 고여 있다.한겨레 김태형

얼굴을 가볍게 옆으로 들어올려 숨을 짧게 들이쉬고 물속에서 천천히 내었다. 그런 규칙적인 사이클은 거리가 늘어나면서 점점 자동적인 동작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오로지 그 리듬에 몸을 맡기고 턴 횟수만 헤아리면 그만이었다.” 기교를 체득할 정도의 이런 꾸준함, 그 안에서 우리는 하루키 소설의 캐릭터를 읽고, 하루키를 읽고, 그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읽기도 한다.

한편 누군가는 이런 태도에 그만 질려버렸다. 국내에 출간된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로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오랜 독자 윤시현(31)씨는 더 이상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지 않는다. “어느 때부터 하루키가 구축하는 비현실 세계”에 거부감이 들고 “하루도 빠짐없이 성장을 위해 거의 장인 정신을 가지고 맨손체조든 달리기든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인물”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20대에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허세 같고 그렇다. 특히 <태엽 감는 새>를 읽으면서 완전히 질려버린 것 같다. 알레고리를 써서 꿈이나 상상으로 들어가는데, 그런 것들이 연관과 상징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지만 그런 비현실적 요소를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윤씨는 어딘가 소설 주인공과 닮은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는 즐겨 읽는다고 했다. “이를테면 한낮에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보는 일상. 경기를 보는 데 열심인 게 아니라 야구장의 분위기를 즐기는 나른한 듯 여유로운 태도가 좋다. 이렇게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는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상실의 시대>와 <언더그라운드>는 최고라 생각한다.

 

“대단히 좋아할 수는 없다” → “여전히 뛰어난 작가”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하루키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단히 좋아할 수는 없다”라는 애매한 말로 운을 떼 “여전히 뛰어난 작가”라고 결론 내렸다. 1990년대 무라카미 하루키가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던 시절을 함께 난 김씨는 “당시에는 한국의 문화적 분위기와 다른 독특함이 있었다. 주인공이 현실로부터 멀어져 있었지만 그것이 도피가 아니라 자신만의 치열함으로 구축한 세계라는 것이 매력 있었다”고 평했다. 꾸준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온 김씨는 그러나 “<1Q84>를 읽을 때 느꼈다. 1권은 되게 재미있게 읽었고, 2권에서는 힘이 빠졌고, 3권부터는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작들을 읽지 않았다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저 소설의 모티프가 되고,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단단해지는 ‘하루키 월드’가 일종의 “자기 복제”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전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는 김씨 또한 이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편이 좋다고 했다. “일상적인 것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전공투 세대를 거쳐왔는데 좌도 우도 아닌 그런 태도(소설에서도 화자들은 결코 일본의 사회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관찰자적 입장을 취한다)가 에세이에서 가장 잘 보인다.” 하지만 김씨는 무라카미 하루키 최고의 작품으로는 에세이 대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꼽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의 뼈대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공고하던 친구 모임에서 이유도 모른 채 절교를 당하고 그 충격에 겉모습이 거의 다른 사람이 될 정도로 깊은 좌절에 빠진다. 16년 동안 쓰쿠루의 무의식을 지배했던 이 사건의 해답을 찾기 위해 도쿄에서 고향 나고야를 찾아가고 핀란드를 향해 떠나는 ‘순례’의 시간이 이야기를 채워나간다. 신간 소식에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든다는 김씨는 이 단순한 구조 안에서 쓰쿠루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주인공마저도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려 하는 사건들을 작가가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스토리텔러로서, 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당대 최고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신씨는, 성실한 스토리텔러로서의 평가 대신 하루키를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로 갈리는 것에 대해 “작가로서 불행한 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20대 때나 읽는 작가’라는 코멘트를 볼 때마다 갸우뚱하게 되는 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40년 동안 꾸준하고 집요하게 이야기를 써온 작가는 국내에서 너무 일찍 평가받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신씨는 “해외에서는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가 많이 꼽히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더 성숙한 작품이 나오기 전의) <상실의 시대>가 많이 읽혔다. 이것이 오히려 (작가와 작품의 취향의 차이로만 귀결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왜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지?  

<상실의 시대>로부터 어쩌면 좀더 이전부터, 하루키의 소설은 어떤 열망에 따라 읽혔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 ㅅ씨는 “하루키 소설의 인물들은 어떤 점에선 지나치게 능력자다. 외모도, 연애도, 하는 짓도 그렇다. 그런데 그것이 밉지만은 않은 이유가 무심하게 정진하는 노력에 의해 다듬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만 상대적 풍요를 누리고 사는 어떤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살 ‘여지’가 있고, 어쩌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색채가 없는…>의 주 구매층은 30대로 전체 구매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3년 전 <1Q84>와 비교하면 20대의 구매 비율은 27.6%에서 15.5%로 줄었고, 30대는 38.6%에서 52.6%로 늘었다.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어쩌면 독자들은 1970년대나 2000년대나 일관적으로 현실과 어느 정도 동떨어져 있는 작가의 태도에 오히려 거리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모질게 겪고 있는데, 당신은 왜 여전히 같은 페이스인 거지? 어쨌거나 소설은 밖에서 독자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이렇게 출발한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이 문장이 어떤 끝을 향해 달려나가는지 볼지 말지는 각자 결정할 문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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