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킬 저항의 공간
래디컬 스페이스
마거릿 콘 지음, 장문석 옮김
삼천리·1만8000원 2008년 11월 서울 마포에 ‘민중의 집’이 생겼다. 이름도 생소한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바꾸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자치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토론하고, 영화 보고, 음식을 먹으며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직접 행동에도 나선다. 시장 영세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대형마트 입점 반대 운동이나 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 민중의 집은 노동자·서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 소통하면서 세상을 바꿔가는 ‘저항의 공간’인 셈이다. 민중의 집과 같은 사회운동 모델이 시작된 곳은 유럽이다. 이 책은 100여년 전 유럽에서 번성한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등 이른바 ‘래디컬 스페이스’(급진 공간)를 통해 지방자치주의와 민주주의 확대, 변혁 정치의 뿌리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사회과학부 교수인 지은이는 “협동조합 등은 민중을 위한 교류와 사교의 공간이자, 투쟁과 변혁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며 협동조합, 민중회관 등에서 나온 각종 조례와 기념 연설문은 물론 경찰 보고서와 신문 기사, 회고록 등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지금도 유럽에는 래디컬 스페이스가 활발히 운영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협동조합 열풍도 ‘저항의 공간’이란 측면에서 곱씹어 봐야 한다. 경제모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프랑스 좌파의 신자유주의 비판
대안은 없다
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허보미 옮김/함께읽는책·1만3000원 ‘대안은 없다’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한 말이다. 주제목과 ‘경제 프로파간다 30년사’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세계 경제정책을 지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 지은이들의 시각이 급진 좌파라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프랑스도 결국 ‘변절’하고 말았다. 지식인, 관료, 경제언론 등이 앞장을 섰다. “모두가 자유주의로 전향한 덕분에 두둑이 주머니를 채웠다. 전향자들은 학회, 심포지엄, 기업 총수 모임 등에 참석하며 날마다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공무원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직자가 공직을 버리고 기업에 투신한다고 직업윤리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학자들은 시스템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모든 정황을 설명해줄 이론을 구상해냈다. 결론은 “금융자본주의만 개혁하면 된다. 자본주의까지 손댈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대대적이고 본질적이며 전면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수와 작가 출신 두 지은이의 가벼우면서도 신랄한 필치가 두드러진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정본 자부하는 ‘북학의’ 새 번역본
완역 정본 북학의
박제가 지음, 안대회 교감·역주
돌베개·2만8000원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를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새로이 번역해 내놨다.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지 10년 만에 20종의 이본까지 대조·교감하며 다시 손질하고 주석과 연보도 대폭 보완했다. 굳이 ‘완역 정본’이라 이름 붙인 이유다. “지금까지 진행된 번역은 대부분 내편과 외편, 그리고 진상본의 전체 내용을 반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본을 교감하지 않고 특정한 사본을 저본으로 번역하여 그 사본이 지닌 오류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책이 그걸 해냈다는 얘기다. <북학의>는 4차례 중국을 다녀온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1778년(정조 2년) 제1차 연행 때의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중국을 배우자!”(책이름이 여기서 나왔다)고 외치며 쓴, 강력한 개혁 의지를 담은 이용후생의 실용서다. 책은 상업과 유통 활성화, 수레와 배·벽돌 등 문명의 도구 적극 도입, 도로와 교량·시장 등의 사회 인프라 구축, 농기구와 물탱크·수차·잠업기계 등의 기술과 기계 도입과 자체 제작 방안 강구, 도구와 제도 표준화, 자원 개발, 직업의 전문화 촉진 등을 촉구하며 사회 전반을 개혁·개방하자고 주장한다. 자세한 해제까지 붙여, 다산 정약용을 거쳐 20세기까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현재성’을 잃지 않은 이 18세기의 걸출한 개혁 사상가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빈민들의 약과 밥이 된 조선 여인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정동주 지음/한길사·23000원 “제가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세상이 정녕 필요로 하면 귀한 약과 밥으로 쓰이고, 한갓 인간의 재주일 뿐이라면 한 사람에게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네 재주가 여자 몸이 아니라면 한 세상 떨치고도 남을 텐데, 미안하구나”라고 한 말에 대한 장계향의 초연한 대답이었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는 임진왜란 직후 혼란기에 태어난 장계향이 가부장적인 시대의 한계와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시인·화가·사회사업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조선 사회를 ‘힐링’했다고 말한다. 평전 형식의 이 책에서 지은이는 그녀가 양반 신분임에도 밭을 일구어 스스로 양식을 생산하고 빈민들과 나누는 ‘자발적 가난의 삶’을 택했다고 전한다. 그 이유로 지은이는 장계향이 유학자인 아버지를 통해 서애 유성룡 등의 사상 세례를 받아 평등의식을 함양했고, ‘삶’을 ‘앎’과 일치시키는 인생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계향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백과서인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보다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려 했던 장계향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시·소설·마당극·오페라 등에서 한국적 소재를 발굴하며 <논개>, <백정>, <소나무> 같은 작품을 집필한 정동주씨가 썼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단독]‘성추행 혐의’ 윤창중 곧 미국 경찰에 출두할 듯
■ 기생충학자 서민 “못생겼다고 아버지도 나를 미워했지만…”
■ 김무성 앞에서 새누리당 의원은 왜 허리를 그렇게 굽혔나?
■ 미 아이비리그 여대생들의 ‘신 성풍속도’
■ [화보]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 해외에서도 타오르다
마거릿 콘 지음, 장문석 옮김
삼천리·1만8000원 2008년 11월 서울 마포에 ‘민중의 집’이 생겼다. 이름도 생소한 민중의 집은 지역사회를 건강하고 따뜻하게 바꾸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자치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토론하고, 영화 보고, 음식을 먹으며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직접 행동에도 나선다. 시장 영세 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대형마트 입점 반대 운동이나 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 민중의 집은 노동자·서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 소통하면서 세상을 바꿔가는 ‘저항의 공간’인 셈이다. 민중의 집과 같은 사회운동 모델이 시작된 곳은 유럽이다. 이 책은 100여년 전 유럽에서 번성한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등 이른바 ‘래디컬 스페이스’(급진 공간)를 통해 지방자치주의와 민주주의 확대, 변혁 정치의 뿌리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사회과학부 교수인 지은이는 “협동조합 등은 민중을 위한 교류와 사교의 공간이자, 투쟁과 변혁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며 협동조합, 민중회관 등에서 나온 각종 조례와 기념 연설문은 물론 경찰 보고서와 신문 기사, 회고록 등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지금도 유럽에는 래디컬 스페이스가 활발히 운영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협동조합 열풍도 ‘저항의 공간’이란 측면에서 곱씹어 봐야 한다. 경제모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허보미 옮김/함께읽는책·1만3000원 ‘대안은 없다’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한 말이다. 주제목과 ‘경제 프로파간다 30년사’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세계 경제정책을 지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 지은이들의 시각이 급진 좌파라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서 프랑스도 결국 ‘변절’하고 말았다. 지식인, 관료, 경제언론 등이 앞장을 섰다. “모두가 자유주의로 전향한 덕분에 두둑이 주머니를 채웠다. 전향자들은 학회, 심포지엄, 기업 총수 모임 등에 참석하며 날마다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공무원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직자가 공직을 버리고 기업에 투신한다고 직업윤리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학자들은 시스템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모든 정황을 설명해줄 이론을 구상해냈다. 결론은 “금융자본주의만 개혁하면 된다. 자본주의까지 손댈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대대적이고 본질적이며 전면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수와 작가 출신 두 지은이의 가벼우면서도 신랄한 필치가 두드러진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박제가 지음, 안대회 교감·역주
돌베개·2만8000원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북학의>를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새로이 번역해 내놨다. 이 책을 처음 번역한 지 10년 만에 20종의 이본까지 대조·교감하며 다시 손질하고 주석과 연보도 대폭 보완했다. 굳이 ‘완역 정본’이라 이름 붙인 이유다. “지금까지 진행된 번역은 대부분 내편과 외편, 그리고 진상본의 전체 내용을 반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본을 교감하지 않고 특정한 사본을 저본으로 번역하여 그 사본이 지닌 오류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책이 그걸 해냈다는 얘기다. <북학의>는 4차례 중국을 다녀온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1778년(정조 2년) 제1차 연행 때의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중국을 배우자!”(책이름이 여기서 나왔다)고 외치며 쓴, 강력한 개혁 의지를 담은 이용후생의 실용서다. 책은 상업과 유통 활성화, 수레와 배·벽돌 등 문명의 도구 적극 도입, 도로와 교량·시장 등의 사회 인프라 구축, 농기구와 물탱크·수차·잠업기계 등의 기술과 기계 도입과 자체 제작 방안 강구, 도구와 제도 표준화, 자원 개발, 직업의 전문화 촉진 등을 촉구하며 사회 전반을 개혁·개방하자고 주장한다. 자세한 해제까지 붙여, 다산 정약용을 거쳐 20세기까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현재성’을 잃지 않은 이 18세기의 걸출한 개혁 사상가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정동주 지음/한길사·23000원 “제가 비록 여자로 태어났지만, 세상이 정녕 필요로 하면 귀한 약과 밥으로 쓰이고, 한갓 인간의 재주일 뿐이라면 한 사람에게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네 재주가 여자 몸이 아니라면 한 세상 떨치고도 남을 텐데, 미안하구나”라고 한 말에 대한 장계향의 초연한 대답이었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는 임진왜란 직후 혼란기에 태어난 장계향이 가부장적인 시대의 한계와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시인·화가·사회사업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조선 사회를 ‘힐링’했다고 말한다. 평전 형식의 이 책에서 지은이는 그녀가 양반 신분임에도 밭을 일구어 스스로 양식을 생산하고 빈민들과 나누는 ‘자발적 가난의 삶’을 택했다고 전한다. 그 이유로 지은이는 장계향이 유학자인 아버지를 통해 서애 유성룡 등의 사상 세례를 받아 평등의식을 함양했고, ‘삶’을 ‘앎’과 일치시키는 인생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계향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백과서인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보다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공존’하려 했던 장계향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시·소설·마당극·오페라 등에서 한국적 소재를 발굴하며 <논개>, <백정>, <소나무> 같은 작품을 집필한 정동주씨가 썼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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