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살림·2만8000원
로버트 트리버스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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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왕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 국가 체제에서, 그들 대부분은 지배계급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가 지은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엔 단서가 있다. 책은 “종속된 사람들이 자기보다 지배집단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지배집단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는 얘기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흑인과 백인 대학생들에게 실험을 했다. 그저 어려운 문제만 풀게 했을 땐 흑인과 백인 대학생들이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흑인, 백인임을 상기시킨 뒤 문제를 풀게 했더니 흑인 학생들의 점수는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단다. 지은이는 이 실험을 “종속된 사람들이 자기보다 지배집단을 선호하며 종속된 정체성을 의식하자마자 수행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로 본다. 물론 그들이 갖는 부정적인 자아상은 지배집단이 강요한 자기기만이다.
우리는 거의 평생을, 매일같이 자신을 기만한다. 아이들은 ‘척하기’ 놀이를 배우며 크고, 40~60대 나이의 어른들은 자신이 잘했던 기억을 최근에 두고 잘못했던 일은 멀리 둔단다. 나는 옛날엔 나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점점 나아졌다고 믿기 위해서다. 동성애 혐오증이 있는 남자들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보다 동성애 영화를 보면서 더 흥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책은 이것을 매력적이지만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경멸하고 공격함으로써 이성애자로서의 자아상을 가지려는 ‘반동 형성’이라고 부른다. 자기기만의 일종이다. 콜레스테롤 검사를 하고 나중에 그 결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 실험에서는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실제보다 높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보다는 낮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두배 이상 많았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기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을 선택, 저장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때론 부풀리고, 때론 낮춘다. 가끔은 심리적 면역계를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기만한다. 갈까마귀 좀도둑이 일부러 먼 곳을 헤매고 펠리컨이 자기 날개를 물어뜯으며 생떼를 부리면서 다른 생물을 기만하려고 애쓰는 동안 인간이라는 종은 좌뇌와 우뇌가 서로 속고 속이면서 자기기만의 맥락에서 진화해왔다.
진화론의 눈으로 보면 자기기만이 불가피한 것이긴 해도 극단적인 자기기만의 끝은 전쟁이며 재난이다. 9·11 이후 미국이 그동안의 외교 정책을 돌아보는 대신 하나의 적을 찾아 화살을 돌린 것처럼, 터키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역사를 완전히 잊고 거짓 역사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기기만이 우리의 최종적 운명은 아니다. 글쓴이의 주장은 우리가 기만과 자기기만을 의식하면 그것을 더 즐기고, 이해하며, 그런 경향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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