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만세!
이현 글, 변영미 그림
창비·9800원
이현 글, 변영미 그림
창비·9800원
엄마보다 술을 못 마시는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맥주회사 영업부 과장님이다. 새벽마다 토하는 소리에 아파트가 울릴 지경이다. 반면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대낮부터 김치부침개에 한잔하고도 학습지 선생님이 올 시간이면 양치하고 시치미 뚝 뗀다. 콜라 광고에 나오는 북극곰처럼 생긴 고1짜리 오빠 박, 장, 수는 징글맞은 우등생이다. 나? 열세살이고 영어는 정말 싫다. 전생에 영국의 식민지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했던 모양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계속되던 5월, 사건이 벌어진다. 딸의 영어공부에 목숨을 건 엄마는 나에게 3개월 동안 필리핀 영어 연수를 가라 한다. 갑작스런 엄마의 명령에 기가 막혀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딸린 발코니에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확 뛰어내릴까 보다” 하고 말한 순간, 나는 죽었다. 저승사자 둘이 나타나 나를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저승사자의 실수, 염라국 장부를 보니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오빠였다. 오빠라고?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 열여섯살밖에 안 된 오빠가 왜 죽어야 하나? 급기야 오빠의 사인이 자살이란다.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황급히 오빠를 데려오려는 저승사자들을 이대로 보낼 순 없다. 성적 때문에 늘 비교당해 미워했던 오빠지만 그래도 내 오빠, 나는 오빠의 자살을 막기 위해 일주일 기한으로 이승 여행을 떠난다.
늘 1등인 오빠는 도대체 왜 죽으려고 하는 걸까. 소설은 여동생 혜수의 관점에서 흘러간다. 오빠의 일상을 따라가고 표정과 행동을 꼼꼼히 살핀다. 오빠는 어떤 종이를 구겨 지갑 속에 숨기고는 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저승사자 실수로 끌려간 동생
오빠 자살 막으려 이승여행
입시에 찌든 아이들 일상 담아 학교에서는 책상 위에 펴 놓은 영어 문제집을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오빠에게 밀려 2등을 했다는 반 친구는 오빠의 수행평가 공책을 훔쳐 불태워버린다. 영혼뿐인 혜수는 발만 동동 구른다. ‘국제중 입학, 댁의 자녀를 명품으로 만들어 드린다’는 세상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에 내몰리는 아이들, 글짓기 대회 전날에는 과외 선생과 미리 써보고 미술 수행평가에는 미술학원에서 사온 그림을 내미는 아이들, 특목고 입시와 내신 관리에 목을 매는 아이들의 모습을 작가는 잔혹하리만치 자세히 그렸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냐”고 열세살 혜수가 묻는다. 초등 3학년부터.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창비 제공
그림 창비 제공
오빠 자살 막으려 이승여행
입시에 찌든 아이들 일상 담아 학교에서는 책상 위에 펴 놓은 영어 문제집을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 오빠에게 밀려 2등을 했다는 반 친구는 오빠의 수행평가 공책을 훔쳐 불태워버린다. 영혼뿐인 혜수는 발만 동동 구른다. ‘국제중 입학, 댁의 자녀를 명품으로 만들어 드린다’는 세상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에 내몰리는 아이들, 글짓기 대회 전날에는 과외 선생과 미리 써보고 미술 수행평가에는 미술학원에서 사온 그림을 내미는 아이들, 특목고 입시와 내신 관리에 목을 매는 아이들의 모습을 작가는 잔혹하리만치 자세히 그렸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냐”고 열세살 혜수가 묻는다. 초등 3학년부터.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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