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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

등록 2013-08-18 20:13

백인천 프로젝트
정재승·이민호·천관율·윤신영
백인천프로젝트팀 지음
사이언스북스·1만8000원
이 책을 어느 분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추천도서’니까 야구 전문 서적? 과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이름이 지은이들 중 가장 앞에 있고 연구 논문의 내용을 담았다니 과학 도서? 50여명이 모여 집단지성으로 연구를 진행한 1년여를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와 피디가 기록한 책이니 르포문학?

<백인천 프로젝트>를 펴낸 사이언스북스 노의성 편집자는 “서점에서 메인 코너를 정해달라기에 고심 끝에 과학 코너를 선택했다”며 “서점에 따라 스포츠·실용 코너에 꽂히기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야조차 확정할 수 없는 놀라운 책은 기획의 시작부터 과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엉뚱하고도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기획은 정재승 교수의 뇌, 아니 트위터 속에서 나왔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요?” 2011년 12월18일 그는 트위트를 날렸다. 이미 1년여 전에 비슷한 질문을 했던 그였다. 미끼를 던져놓고 그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한국 야구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트위터에서 자원자를 모아 1월부터 시작합니다. 영문 논문과 우리글 리포트를 세상에 내놓을 예정입니다”고 밝혔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야구와 관련한 최초의 과학 논문을 써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학콘서트>와 각종 칼럼, 텔레비전 출연 등으로 널리 알려진 과학자이자 파워 트위터리언인 정재승 교수가 말이다. 통계학자, 컴퓨터 전문가, 이공계 대학원생부터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덕후’들까지 수십명이 참여 뜻을 밝혔다. 이들은 백인천 선수가 국내 프로야구 출범 첫해인 1982년에 0.412의 타율로 4할을 넘긴 뒤 30년 동안 4할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현상을 분석해보기 위해 뭉쳤다. 최종 논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58명이다.

첫 시도는 아니었다. 미국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미국 야구에서 1941년 테드 윌리엄스를 마지막으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타자의 나태함이나 경기 환경 탓이 아니라 ‘프로 야구 리그’라는 거대한 생태계가 서서히 안정화라는 진화단계를 거쳐 선수 간 격차가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백인천 프로젝트팀은 한국 야구에도 ‘굴드 가설’이 적용될지 검증에 나섰다. 960쪽에 달하는 한국야구위원회 공식 기록과 씨름해 30건의 오류를 발견했다. 검증된 데이터로 “한국 야구 30년 동안 타자의 기량은 꾸준히 향상됐으며 선수 사이의 표준 편차가 감소돼 점점 ‘튀는’ 선수가 나오기 힘들게 됐다. 앞으로 4할 타자는 다시 나오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굴드 너머’를 연구하지 못하고 ‘굴드 검증’ 수준으로 마무리됐으니 책의 결론만 보자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지금부터다. 책은 수십명이 부대끼는 동안 리더가 떠오른 과정,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소규모 핵심 집단, 그럼에도 집단이 빚어낸 놀라운 성과를 찬찬히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더 큰 일을 벌였는데 바로 ‘야구 학회’의 창설이다. 트위터에 살랑 분 야구 바람이 한국 야구계를 뒤바꾸고 야구학을 탄생시킬 지경에 이르렀으니 계속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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