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오픈 북스’ 행사에 참여한 김영하 소설가.
세계 최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김영하 소설가 낭송회 열어
‘한국의 신기한 만화’ 웹툰도 인기
김영하 소설가 낭송회 열어
‘한국의 신기한 만화’ 웹툰도 인기
12일 오후 2시(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 교회의 높은 천장을 따라 한국 소설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아무도 내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주인공이면서도 소외감이 드는 기묘한 느낌입니다.” 통역이 되고서야 자리를 채운 50여명의 독일인들이 웃었다. 김영하 소설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낭송회 현장이었다.
이날 낭송회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에 맞춰 시청이 주관하는 ‘오픈 북스’ 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과도 도서전의 축제 분위기를 함께 나누자는 취지로, 9~12일 나흘에 걸쳐 작가 낭송회, 주제별 전시회 등 107개의 출판 관련 행사가 시내의 도서관, 박물관, 교회 등에서 열리는 형태다. 10월 초 <나는 나를…> 독일어판을 재출간한 김영하 작가는 이미 독일에서만 <검은 꽃>, <빛의 제국> 등 4권의 책을 냈다. 낭송회에 참여한 독일인 브리기트 케일러(55)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듯한 아름다운 언어에 매료돼 <나는 나를…>을 두 권 구입했다”며 “한 권은 방송국장으로 일하는 옆집 이웃에게 전달해 한국 소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 동안 열린 제65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는 세계 100개국에서 온 출판인들이 7300개의 전시관을 차렸고 27만6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세계 저작권 계약의 25%가 체결된다”는 명성은 옛이야기가 됐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 최대의 도서전다운 위용을 자랑했다.
한국의 ‘만화’, 일본 ‘망가’ 이길까
1~8홀까지 차려진 도서전에서 한국은 3홀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한국 공동관’을, 4홀에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한국관’을 설치했다. 한국 공동관은 만화관과 웹툰관을 따로 운영했다. ‘만화’(Manhwa)는 우리말을 그대로 살려 홍보했는데 전시관을 찾은 유럽인들을 포함한 만화팬들은 이미 일본이 먼저 알린 ‘망가’(Manga)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한국 만화관 맞은편이 일본의 ‘망가’ 소개 부스였다. 오히려 영어 합성어인 ‘웹툰’(웹+카툰)이 ‘한국에서 온 신기한 만화’로 받아들여졌다. 닷새 동안 만화관과 웹툰관에는 2만명 넘는 관람객이 찾아왔고 40여개 출판사가 판권 상담을 했다. <만화 삼국지>의 이현세 작가와 <노블레스>의 손제호·이광수 작가, <갓 오브 하이스쿨>의 박용제 작가, <신의 탑>의 시우 작가도 사인회를 열어 분위기를 달궜다.
출협이 차린 한국관은 ‘이웃’이라는 열쇳말로 ‘주제가 있는 그림책’ 전시를 했다. 공동 참가사로는 교원, 사회평론의 영어교재 브랜드 브릭스 에듀케이션, 아가월드, 도서출판 북극곰, 한솔교육 등 어린이·교육 출판사가 대다수여서 ‘유아교육전’을 방불케 했다. 예림당, 애플비 등 20여개 업체는 따로 전시관을 차렸다.
노벨문학상 발표에도 북미관 한산
8년째 도서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한문숙 문학동네 저작권팀 과장은 “북미관이 차려지는 8홀은 늘 북적였는데 올해는 캐나다 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도 한산한 모습이어서 도서전의 활력이 떨어지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앨리스 먼로의 해외 출판 에이전시 담당자를 수상자 발표 다음날 만났는데 미팅이 줄줄이 잡혀 매우 바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주요 도서의 저작권 계약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한 대형 출판사 대표는 “최근에는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 기획 단계부터 어떤 책이 나올지 정보를 받아보기 때문에 직접 만나지 않고도 계약을 할 수 있다”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현장에서 거래되는 저작권 규모는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빈국인 브라질은 150여개의 출판사가 참가한 단체관을 꾸렸다. 규모는 컸지만 브라질 대표 작가인 파울루 코엘류가 참석하지 않아 김이 조금 빠졌다. 대신 코엘류의 책을 내는 전세계 출판사들이 모이는 행사가 열렸고 ‘파울루 코엘류 홍보 버스’가 도서전 기간 동안 시내를 돌아다녔다.
인터넷 권력 견제… 전자책 시장 후끈
이번 도서전은 개막식부터 인터넷 기업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위르겐 보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집행위원장은 개막 기자회견에서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독자를 가두는 기계들”이라며 “이들은 물류의 마술사이지만 출판사는 아니며 열정이 없다”고 말했다. 개막식 기조연설을 한 고트프리트 호네펠더 독일 도서출판유통협회장은 “유럽연합(EU)-미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아마존, 애플,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의 요구로 도서정가제와 같은 출판업계 질서가 희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도서전에는 전자책 관련 기업 150곳이 참여해 활발히 교류했다. 최근 유럽, 미국, 중동 등에 전자책을 공급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 전자책 업체도 30여곳 참여했다. 도서전 현장에서는 미국, 영국 전자책 시장을 대상으로 한 시상식도 열렸다. 지난해엔 최초로 전자책 공동관을 만들어 마케팅에 공을 들였던 한국 업체들 역시 올해 도서전 기간에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의 굵직한 전자책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전시관 3홀에 설치된 만화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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