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꽃 제공
일생을 틀 속에만 갇혀 지내
새끼 한번 핥아주지도 못한
어미의 첫 나들이는 ‘살처분’
새끼 한번 핥아주지도 못한
어미의 첫 나들이는 ‘살처분’
유리 지음
이야기꽃·1만3500원 “알고는 못 먹는다”며 외면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내막을 알고 나면 도저히 다시 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그런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중의 하나가 돼지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 도축되는지, 특히 전염병인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고도 모른다. “구제역으로 돼지 331만8000마리 살처분”이라는 내용의 신문 기사는 그래서 더 건조한 톤으로 쓰이는지도 모른다. ‘살처분’이라고 점잖게, 혹은 잔혹하게 일컬은 그 사건을 이 책은 기어코 끄집어내 그림으로까지 그려 생생하게 눈앞에 내민다. 하지만 아름답다. 하늘을 향한 돼지의 단단한 코, 새끼를 바라보는 눈망울, 그 위의 속눈썹까지 그 자체로 온전한 생명이다. 그런 돼지가 자기 엉덩이도 볼 수 없는 틀 속에 갇혀 일생을 보낸다. 새끼에게 젖을 주면서도 틀 안에 누워 있다 보니 한번 핥아주지도 못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해줘도 못 먹는다. 눈물이 난다. 그런데 더 나간다. 살처분되던 날, 2010년 겨울의 어느 날을 그려놨다. 구제역 같은 전염병의 경우 한 마리만 걸려도 모두 죽을 운명이다. 비좁은 틀에 돼지들을 가둬놓고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항생제 사료만 먹여대던 사람들은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구덩이를 파놓고 그곳으로 돼지들을 몰아넣는다. 모두 죽인 뒤 구덩이를 덮어야 하지만 알 수 없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331만8000마리가 아닌가! 평생을 틀에 얽매여 살았던 돼지들에게는 살처분, 그날이 첫 외출이다. 전염병이 돌아 자신이 키우던 가축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축산인들을 취재차 만난 적이 있다. 살처분을 하며, 자식처럼 이름까지 붙여가며 키웠던 가축들을 묻으며 오열하다 한동안 정신이 나간 이도 있었다. 모두의 비극이다. 돼지도 사람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보자는 것이 책의 의도일 터다. 맨드라운 연필로 그린 듯한 그림체가 감동을 더한다. 어린 시절을 경기도 여주의 농장에서 뛰어놀며 자란 신인 작가 유리의 감성이다. 김장성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가 글을 다듬는 데 힘을 합했다고 한다. 초등 4학년부터.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이야기꽃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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