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휴먼어린이 제공
한가지 색깔만 강요하는 법
모두 방관땐 민주주의 질식
한국의 유신시대 연상시켜
모두 방관땐 민주주의 질식
한국의 유신시대 연상시켜
프랑크 파블로프 글·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프로젝트 옮김
휴먼어린이·1만3000원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새로 법이 생겨서 자기가 키우던, 갈색이 아닌 개와 고양이는 전부 죽여야 한다니 말이다. 정부는 “고양이가 너무 불어나서” 그런 법을 만들었다고 했고 전문가들은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 살기 가장 알맞다”고 했다고 한다. 책은 그런 법이 만들어진 어떤 나라, 어떤 시대를 그려나간다. 시대는 더 전진한다. ‘갈색 법’을 비판하는 <거리 일보>가 폐간되었고 출판사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성인 남성인 주인공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죽이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폐간되는 신문사를 보며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참았다. 이제 세상에는 <갈색 신문>만 남았다. 살다 보니 살 만하다. 경마에서 갈색 말에 돈을 걸었다가 돈을 딴 날에는 ‘갈색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좋은 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갈색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니 “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이 주인공을 잡으러 왔다. 이제는 ‘이전에 키우던 고양이 색깔’도 문제 삼겠다고 한다. 비로소 주인공은 생각한다. “우리가 어리석었어요. 처음 갈색 법을 만들었을 때 눈치챘어야 해요. 하지만 어떻게요? 해야 할 일도 많고, 걱정거리도 산더미 같은데…. 나만 침묵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도 조용히 살겠다고 그저 보기만 하고 있잖아요. 안 그래요?” 프랑스 작가가 쓴 이 짤막한 이야기는 나치를 옹호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극우파 후보 장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했던 2002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큰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갈색 아침 현상’이라 불린 이 일이 극우파 후보의 낙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러시아 작가가 그림을 그려 그림책으로 낸 것이 한국판으로 번역됐다. 이 책을 읽고서 “이상하다”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어른들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맞아, 이런 나라는 이상한 나라란다”라고 답해주기 위해서는, “나만 침묵한 건 아니잖아”라는 <갈색 아침> 주인공의 변명 뒤로 숨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터다. 초등 4학년부터.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휴먼어린이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