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경산 노부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배정수(52)씨가 최근 <행복한 사형수>(도서출판 국보 펴냄)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던 그는 지난 2010년 3월, 19년만에 출소를 했다. 오랫동안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옥바라지 해온 아내와 새 삶을 꿈꿨지만 출소 6개월만에 아내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배씨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은 <한겨레>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2011년 6월21일자 12면 참조)
당시 보도가 나간 뒤 배씨를 돕고싶다는 문의가 줄이었다. 한 달 동안 1687명이 후원금을 보내와 2000만원의 성금을 그에게 전달했다. 마을버스 기사로 한 달에 150만원을 벌어 부인의 병원비를 대고 있던 그는 “신문 보도 뒤 분에 넘치는 관심과 응원을 속에서 경제적 도움도 받았고 대학, 성당, 교도소 등 여러 곳의 강연 요청도 받게됐다”며 “그 과정에서 내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행복한 사형수>에서 배씨는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반성부터 깊은 감사까지 모든 것을 담았다. ‘첩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 분노를 키워오던 어린 시절, 한 순간의 분노로 친척을 살해한 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던 순간에 본 아내의 얼굴, 2심에서 무료 변론을 맡아준 변호사이자 훗날 양아버지가 된 배기원 전 대법관과의 만남, 무기징역과 20년형으로 감형되던 순간의 감동, 감옥에서 받아본 아내와 두 딸의 편지, 교도소에서 자격증을 7개나 따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담담한 어조로 적
혀 있다.
20년동안 감옥에 있던 아버지의 부재는 두 딸의 어린 시절 기억 곳곳에 남아있다. 배씨가 딸이 어린 시절 학교 과제로 했던 가족 사진에 아빠 자리가 비어있는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5월12일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2년6개월 동안 투병을 한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숨을 몰아쉬며 가족에게 “미안해, 사랑해”라고 말했다. 아내가 죽은 뒤 배씨는 장기와 시신을 기증한다는 서약서를 썼다. ‘사형수’였던 그는 남은 인생을 두 딸과 함께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도 버스 운전을 계속하며 법무부 교정기관 교육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책을 통해 어둡고 눅눅한 암흑의 골방에 갇힌 이들, 죄악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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