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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쇠로 만든 닫힌 방에서 터져나온 외침

등록 2013-12-29 19:42수정 2015-11-03 00:38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루쉰 전집 2: 외침, 방황
루쉰 지음, 루쉰전집번역위원회 옮김
그린비 펴냄(2010)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보니 루쉰 생각이 난다. 루쉰의 첫 소설집 제목이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외침>을 쓴 배경에는 한 단어가 있다. ‘적막감’이었다. 루쉰이 말한 적막감은 이런 것이다. “낯선 이들 속에서 혼자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다시 말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면 아득한 황야에 놓인 것처럼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하여 내가 느낀 바를 적막이라 이름했다.” 이 적막은 나날이 자라나서 독사처럼 청년 루쉰의 영혼을 칭칭 감았고 루쉰은 이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영혼을 마취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 뒤로 그는 옛 비문을 베끼는 일을 하고 살았다. 그때 루쉰처럼 적막감을 느끼던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루쉰에게 글을 써보라고 했다. 루쉰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가령 쇠로 막은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루쉰은 친구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한다. ‘친구의 희망을 꺾어버릴 수야 없지. 나는 아직도 지난날 그 적막 어린 슬픔을 잊지 못하고 있지. 적막 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이 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 위안이라고 주고 싶다. 내 젊은 시절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 안의 고통스런 적막이라 여긴 것을 더는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

<외침> 안에는 <광인일기>, <쿵이지>, <고향>, <아큐정전> 등이 들어 있다. <광인일기>는 광인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사회의 모습에 대해 외친다. <쿵이지>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한낱 조롱거리로 여기는 것도 식인사회의 모습이란 것을 보여준다. <아큐정전>에서 아큐는 언제나 패배하지만 이내 자신의 패배를 성공으로 돌려버린다. 루쉰은 이런 ‘정신승리법’이 실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자기 기만이라고 외친다.

내게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역시 쇠로 만든 방에서 터져 나온 외침같이 느껴진다. 우리 마음속에도 달래기 어려운 적막감이 도사리고 있다. 루쉰은 <고향>에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삶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삶을 가져야 한다”고 쓴다.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들은 길을 잃은 채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 자신의 안녕 그리고 희망과 관련이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루쉰을 스승으로 모시는 학자 첸리췬은 <내 정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좌우명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서로 부축한다-이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그에게는 외면과 내면의 모든 암흑을 막아내는 빛이었다. 틀림없이 우리에게도 그럴 것이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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