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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당신이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

등록 2013-12-29 20:08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이 겐 지음, 안상현 옮김
윤출판·1만3000원
책은 일본 오키나와 현의 한 마을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가 행한 연구를 소개한다. 그 마을 65살 이상 노인 708명 모두를 진찰해 보니 그중 ‘노인성 치매’로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이 27명이었다. 이는 대도시인 도쿄의 유병률과 같았다. 하지만 마을 어떤 노인도 우울증이나 망상, 환각, 야간 섬망(밤중에 소란 피움)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도쿄에선 치매 노인의 20%가 야간 섬망을 보이고 미국에선 치매 환자의 25~50%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보고가 있는데 말이다.

도쿄대 의대 교수로 오랜 시간 치매 노인을 돌봐왔던 지은이 오이 겐은 묻는다. 똑같은 치매인데 이런 증상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오키나와 노인들이 겪고 있는 치매를 ‘순수 치매’라 부른다. 순수 치매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중심 증상’만 있을 뿐 망상, 환각, 야간 섬망 등의 ‘주변 증상’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서 그는 ‘환자’가 아닌 ‘사람’, ‘증상’이 아닌 ‘관계’를 보자고 제안한다. 대도시 도쿄와 오키나와 마을의 차이는 ‘노인들이 겪는 관계’의 차이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다. “오키나와의 마을은 노인이 정성스러운 간호와 존중을 받는 지역이다. 이 지역 노인은 정신적 갈등이 없고 설령 뇌에 기질적 변화가 생겼더라도 우울증, 환각, 망상이 생기지 않는 단순(순수) 치매 상태에 그치는 것이다.”

당신은 치매를 왜 두려워하는가? 일본존엄사협회가 조사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증 치매’의 모습은 이렇다. 날짜·장소·가족을 식별할 수 없다, 이유 없이 배회한다, 밤에 자다 깨서 소란을 피운다,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변을 벽에 바르거나 먹는다…. 지은이는 “이런 설명은 조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틀렸다”고 지적한다. 제시된 증상 대부분이 ‘주변 증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주변 증상’을 상상하며 치매를 두려워한다.

책은 치매 환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길 권한다. “직전 기억을 잊고, 했는데 하지 않았다 하고,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책망을 듣는 상태”에서 불안과 초조를 느끼며 이는 곧 분노와 슬픔으로 바뀐다. 지능이 저하된 사람의 감정이다. 이것을 주변에서 “성격이 나쁘게 변했다”고 해석한다면 치매 노인은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치매 환자를 위한 ‘완화 의료’에 힘쓰고 있다는 노의사의 글은 따뜻하다. 인간이 무엇인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관계는 무엇인가, 소통은 무엇인가.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말한다. 침상에 누운 치매 노인에게 말을 걸 때는 내려다보지 말고 몸을 낮춰 눈을 맞추라고,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치매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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