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무엇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2013) 친구와 산책하면서 각자가 아는 아름다운 도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프랑스 리옹이 아름답다고 했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리옹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얻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리옹은 이런 단순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만든 곳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해 선출된 시장이 이 질문에 더 충실했을지도 몰라. 리옹은 실제로 운이 좋으면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만큼 처마들과 회랑들이 연결되어 있어. 그러고 보면 가장 강력하고 단순한 질문에 대한 평생에 걸친 대답이 삶 전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내가 평생 던져야 할 나의 단순한 질문은 무엇일까? 밀란 쿤데라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것인가란 질문을 평생에 걸쳐서 던졌고, 에밀 아자르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조지 오웰은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를,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었다. 토머스 엘리엇은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에서 ‘내가 감히 해도 될까? 내가 감히 해도 될까?’라고 물었고 월트 휘트먼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인가? 결국,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기뻐하는 아이일 뿐이지 않은가?” 마크 쿨란스키의 책 <무엇>(WHAT?)은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오로지 질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책 안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0여가지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질문으로만 이루어진 책의 제목이 ‘질문’이 아니라 <무엇>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누구를 따지는 사람들이 험담하는 사람들이고 언제를 따지는 사람들이 조급한 사람들이고 왜를 따지는 사람들이 몽상가들이고 어디를 따지는 사람들이 길 잃은 사람들이고 어떻게를 따지는 사람들이 실용주의자들이라면 무엇을 따지는 사람들은 사물의 핵심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인 걸까?” 그런데 질문도 없이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질문이 없는데도 나온 답변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질문이 있어도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펜하우어가 생각한 것처럼 답변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국 잘못된 질문을 던졌다는 증거일 뿐인가? <무엇>의 맨 마지막 장에는 ‘인내심’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가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말해주려고 애쓰지 않는가? 질문의 책인 <무엇>의 맨 마지막 장에는 간절하고 아름다운 선언문이 등장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글이다.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당신은 매우 젊고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강하게 당신에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선생, 부디 당신의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고 질문들 그 자체를 마치 걸어 잠근 방들처럼, 마치 완전히 외국어로 저술된 책처럼 사랑하려 노력하십시오. 지금 답변을 찾으려 들지는 마셔야 하는데, 당신이 답변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당신이 그 ‘답변’에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것’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에 따라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점차적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언젠가 먼 훗날에 살아가다가 답변과 마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2013) 친구와 산책하면서 각자가 아는 아름다운 도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프랑스 리옹이 아름답다고 했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리옹은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얻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리옹은 이런 단순한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만든 곳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해 선출된 시장이 이 질문에 더 충실했을지도 몰라. 리옹은 실제로 운이 좋으면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을 만큼 처마들과 회랑들이 연결되어 있어. 그러고 보면 가장 강력하고 단순한 질문에 대한 평생에 걸친 대답이 삶 전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내가 평생 던져야 할 나의 단순한 질문은 무엇일까? 밀란 쿤데라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것인가란 질문을 평생에 걸쳐서 던졌고, 에밀 아자르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를, 조지 오웰은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를,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었다. 토머스 엘리엇은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에서 ‘내가 감히 해도 될까? 내가 감히 해도 될까?’라고 물었고 월트 휘트먼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인가? 결국,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기뻐하는 아이일 뿐이지 않은가?” 마크 쿨란스키의 책 <무엇>(WHAT?)은 한 문장도 빼놓지 않고 오로지 질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책 안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0여가지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질문으로만 이루어진 책의 제목이 ‘질문’이 아니라 <무엇>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누구를 따지는 사람들이 험담하는 사람들이고 언제를 따지는 사람들이 조급한 사람들이고 왜를 따지는 사람들이 몽상가들이고 어디를 따지는 사람들이 길 잃은 사람들이고 어떻게를 따지는 사람들이 실용주의자들이라면 무엇을 따지는 사람들은 사물의 핵심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인 걸까?” 그런데 질문도 없이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질문이 없는데도 나온 답변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질문이 있어도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쇼펜하우어가 생각한 것처럼 답변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국 잘못된 질문을 던졌다는 증거일 뿐인가? <무엇>의 맨 마지막 장에는 ‘인내심’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우리가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말해주려고 애쓰지 않는가? 질문의 책인 <무엇>의 맨 마지막 장에는 간절하고 아름다운 선언문이 등장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등장하는 글이다.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당신은 매우 젊고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최대한 강하게 당신에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선생, 부디 당신의 마음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인내하시고 질문들 그 자체를 마치 걸어 잠근 방들처럼, 마치 완전히 외국어로 저술된 책처럼 사랑하려 노력하십시오. 지금 답변을 찾으려 들지는 마셔야 하는데, 당신이 답변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당신이 그 ‘답변’에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것’에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에 따라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점차적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언젠가 먼 훗날에 살아가다가 답변과 마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