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스토리킹 문학상의 심사가 열린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한 심사위원(오른쪽 끝)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비룡소 ‘스토리킹’ 심사 현장
“<컬러 보이>보다는 <건방이의 건방진 권법 수련기>가 더 재밌고 해피엔딩이라 좋았어요.” 경쾌한 목소리의 여자 어린이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두 책 중 <건방이…>가 더 좋다고요? 그럼 반대 의견 있으신 분?”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11명의 어린이가 손을 추켜올렸다. 발언권을 얻은 남자 어린이가 ‘울컥’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설이 꼭 해피엔딩이어야 좋은 겁니까? 음…, 그러니까 ‘배드엔딩’이어도 감동과 교훈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강남출판문화센터 지하 2층 강당. 어린이책 출판사 비룡소가 주최하는 제2회 스토리킹 문학상의 어린이 심사위원단이 모였다. 이미 두 책에 대한 ‘온라인 심사’를 마친 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 100명 중 절반인 50명의 심사위원단이 참가해 얼굴을 맞대고 벌이는 ‘오프라인 심사’ 자리다. 서울, 경기 지역은 물론 강원도 태백, 경북 김천, 충북 충주 등 전국에서 모여든 아이들은 “물러설 수 없다”는 표정으로 1시간30분이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권의 책을 놓고 벌이는 ‘공개 오디션’인 셈인 이 자리에서 어린이 심사위원단은 매서운 평가를 쏟아냈다. “제목을 보세요. <건방이…>는 제목에서부터 권법 수련기라는 게 다 드러나서 흥미가 안 생기는데 <컬러 보이>는 ‘어, 뭐지?’ 하면서 흥미가 팍 생깁니다.” “무슨 소리, <컬러 보이>는 똑같은 내용의 영화도 있어 새롭지 않았어요.” “아니, 그 영화가 <컬러 보이>랑 어디가 똑같습니까? 저는 오히려 <컬러 보이>를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아요, <컬러 보이>는 읽을수록 새로운 내용이 나와서 재밌었어요.” “전 반대예요, 반전이 계속되니 오히려 헷갈렸어요.”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를 잃은 아이가 오방도사의 후계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어린이 무협물 <건방이의 건방진 권법 수련기>와 인간을 돕기 위한 로봇인 ‘할리’와 인간 사이의 대립을 다룬 공상과학소설 <컬러 보이>를 둘러싸고 ‘24 대 26’으로 나뉜 아이들은 팽팽히 맞섰다. “이해가 잘 되고 재밌는 <건방이…>가 저학년층에게까지 잘 팔릴 것”이라는 판매 분석까지 나오자 한 아이는 “저학년도 결국 고학년이 될 테니 고학년용인 <컬러 보이>가 더 인기 있을 것”이라 받아쳤다.
전국서 모인 50명의 어린이들
최종 후보 오른 두 작품 토론
“반전요소 많아서 되레 헷갈려”
“읽을수록 새 내용 나와서 재미”
90분 공방 오갔지만 결론 못내 어린이 위원들 열띤 심사 덕에
작년 수상작 3만부 넘게 판매 비룡소는 지난해 ‘어린이 장르문학상’인 ‘스토리킹’을 제정했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갈수록 자극적인 매체에 익숙해져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권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박상희 비룡소 대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밌는 이야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갈 책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100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려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한 것은 이런 상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일단 이 상은 어른 ‘작가 지망생’부터 어린이 ‘심사위원단’에게까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당선작에 상금 2000만원을 주는 이번 공모에 추리, 판타지, 무협 등 어린이용 장르문학 작품 65편이 접수됐다. 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 김지은씨와 동화작가 한윤섭씨가 두 편의 최종 후보작을 선정했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에도 200명 넘게 지원해 이들 중 100명을 뽑아야 했다. 지난해 첫회 수상작은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따라 갈렸다. 김수진 민음사 홍보기획팀장은 “지난해에 1차 심사를 했던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았던 작품이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따라 떨어졌다”고 말했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눈은 정확했다. 첫회 수상작인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는 출간 7개월 만에 3만부 넘게 팔려나갔고 그 성공에 힘입어 지난 1월에 연작으로 펴낸 2권도 두달 새 1만부가 넘게 팔렸다. 아직 나오지 않은 5권까지 중국에 출판권이 팔린 상태다. 이날 제2회 스토리킹 심사 현장을 찾은 <스무고개…>의 작가 허교범(28)씨는 “어린이들이 이렇게 치열한 토론을 통해 심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상이 더욱 값지게 느껴져 고맙고 반갑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규형(12)군은 “<스무고개…>를 재밌게 읽고 스토리킹이란 상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어린이 심사위원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곧바로 인터넷으로 신청했다”며 “심사에 참여해보니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떨어질 작품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끝이 났다. 심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이 시작되자 강당 밖에 대기 중이던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어머니들이 들어와 저마다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엄마 권유로 참가했다는 심사위원 김민경(13)양은 “평소에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타지, 호러 소설을 써서 올린다”며 “직접 소설을 읽고 심사에 참여해보니 떨리기도 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비룡소는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서면 평가와 토론 결과를 취합해 오는 28일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최종 후보 오른 두 작품 토론
“반전요소 많아서 되레 헷갈려”
“읽을수록 새 내용 나와서 재미”
90분 공방 오갔지만 결론 못내 어린이 위원들 열띤 심사 덕에
작년 수상작 3만부 넘게 판매 비룡소는 지난해 ‘어린이 장르문학상’인 ‘스토리킹’을 제정했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갈수록 자극적인 매체에 익숙해져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권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박상희 비룡소 대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재밌는 이야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갈 책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100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려 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한 것은 이런 상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일단 이 상은 어른 ‘작가 지망생’부터 어린이 ‘심사위원단’에게까지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당선작에 상금 2000만원을 주는 이번 공모에 추리, 판타지, 무협 등 어린이용 장르문학 작품 65편이 접수됐다. 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 김지은씨와 동화작가 한윤섭씨가 두 편의 최종 후보작을 선정했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에도 200명 넘게 지원해 이들 중 100명을 뽑아야 했다. 지난해 첫회 수상작은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따라 갈렸다. 김수진 민음사 홍보기획팀장은 “지난해에 1차 심사를 했던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았던 작품이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결정에 따라 떨어졌다”고 말했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눈은 정확했다. 첫회 수상작인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는 출간 7개월 만에 3만부 넘게 팔려나갔고 그 성공에 힘입어 지난 1월에 연작으로 펴낸 2권도 두달 새 1만부가 넘게 팔렸다. 아직 나오지 않은 5권까지 중국에 출판권이 팔린 상태다. 이날 제2회 스토리킹 심사 현장을 찾은 <스무고개…>의 작가 허교범(28)씨는 “어린이들이 이렇게 치열한 토론을 통해 심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상이 더욱 값지게 느껴져 고맙고 반갑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규형(12)군은 “<스무고개…>를 재밌게 읽고 스토리킹이란 상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어린이 심사위원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곧바로 인터넷으로 신청했다”며 “심사에 참여해보니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떨어질 작품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끝이 났다. 심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이 시작되자 강당 밖에 대기 중이던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어머니들이 들어와 저마다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엄마 권유로 참가했다는 심사위원 김민경(13)양은 “평소에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판타지, 호러 소설을 써서 올린다”며 “직접 소설을 읽고 심사에 참여해보니 떨리기도 하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비룡소는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서면 평가와 토론 결과를 취합해 오는 28일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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