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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현기영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4·3 이야기

등록 2014-03-02 20:04

그림 현북스 제공
그림 현북스 제공
<테우리 할아버지>
<테우리 할아버지>
테우리 할아버지
현기영 글, 정용성 그림
현북스·1만2000원

한라산 자락, 올망졸망 솟은 오름 한가운데 노인이 서 있다.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푸른데 노인의 얼굴은 검기만 하다. 깊게 파인 주름이 표정을 더욱 굳어 보이게 한다. ‘테우리’ 할아버지다. 제주도 사투리로 ‘소를 기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마을 사람들의 소를 맡아 키워주는 그가 다른 소들은 다 주인이 찾아간 뒤에도 남아 있는 암소와 송아지 한마리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친구가 왜 안 오지?” 눈을 감으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할아버지가 젊었던 날,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제주섬에서 겪은 일. 남한과 북한이 따로 나라를 세우려 하자 일어났던 섬사람들의 봉기. 그리고 총을 쏘며 나타난 군인들. 겁이 난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 숨었고 군인들은 이들을 찾아내겠다며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죽이고 또 죽였다.

모두 아팠고 숨죽였던 시절
소 키우는 할아버지의 회고
제주 문인과 화가의 심혈작

친구는 그때 다쳤다. 젊은 테우리였던 할아버지도 군인들에게 붙잡혀 많이 맞았다. 도망친 사람들이 숨은 곳을 대라기에 무심코 지목한 동굴에서 아이 하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발견됐다. 군인들이 그들을 죽였고 할아버지는 이후 웃음을 잃었다. 평생 초원에서 홀로 소를 키우는 삶을 살았다. 모두가 아팠고 모두가 숨죽였던 시절이었다.

이 그림책은 제주 출신 작가인 현기영의 단편소설 <마지막 테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현기영은 책에 쓴 해설을 통해 “4·3의 대참사 이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아주 잃어버려 해변을 떠나 홀로 초원에서 소 떼와 더불어 사는 늙은 테우리를 만난 적이 있다”고 밝히며 이 그림책이 “늙은 테우리의 모습을 화가 특유의 창의적 필법으로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그림을 그린 정용성 작가도 제주 출신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껏 제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는 특히 4·3과 관련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우리가 저지른 학살극을 어떻게 후세에 전할 것인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8년 제주에서 확인된 것만 1만5000여명, 미확인 희생자를 합치면 3만명에 이르는 이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 그런데도 반세기를 숨죽여야 했던 사건. 이 그림책은 제주의 문인과 화가가 만들어낸 작품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우리나라에 이런 사건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알려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그림 현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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