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는가
톰 하트만 지음, 이시은 옮김
어마마마·2만원
톰 하트만 지음, 이시은 옮김
어마마마·2만원
“집중된 자본이 트러스트, 기업결합, 독점기업을 만들어내는 사이에, 일반 시민은 뒷전으로 밀려나 먹고사는 데 급급하거나 기업의 강철 군화에 짓밟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본래는 면밀한 법의 규제 하에서 국민의 종복으로 태어난 기업이 빠르게 국민의 주인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1888년 12월 미국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의회에서 한 연설이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던 1886년 법원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칠 기록을 슬그머니 만들었다. “기업도 인간이다.” 부호들의 변론을 도맡다 연방대법원장이 된 레믹 웨이트가 비공개 심리에서 한 말로 알려졌다.
‘향후 전세계적인 위험을 초래할 기반을 마련’한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이것이 공식적인 발언이 아니었기에 어떤 논쟁도 거치지 못한 채 기록으로 굳어져 버렸다. 당시 웨이트 연방대법원장은 샌타클래라카운티가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서던퍼시픽 철도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그 철도회사의 논리대로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 1항의 취지에 따라 이번 소송의 피고인 기업도 인간이다”라고 말한 걸로 기록됐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판결에서 문제의 이 기록은 훗날 법원 공보관의 실수 혹은 어떤 의도로 삽입된 문장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판결 이후부터 1910년까지 수정헌법 제14조와 연관된 연방대법원 사건 307건 중 정작 ‘애초 보호 대상’이던 흑인에 관한 사건은 19건뿐이었고 나머지 288건이 모두 ‘자연인의 권리’를 노리는 법인들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미국의 진보적 언론인이자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행자인 톰 하트만은 이 책에서 ‘기업의 법인격’ 탄생과 그것이 낳은 ‘불평등한 결과’에 주목한다. 책의 원제가 ‘불평등한 보호’다. 지은이는 ‘기업 세력에 대한 분노’에서 탄생한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으며 그 결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하나하나 따진다.
2009년 9월 불법 판촉행위를 해온 제약회사 화이자에 벌금형이 내려졌다. 당시 화이자는 약을 팔면서 의사들에게 불법 향응을 제공했고 식품의약국의 승인도 나지 않은 약 등을 처방받아 먹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책은 “하지만 화이자는 기업이라는 법 개념에 불과해 아무도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며 분노한다. 더 분노할 것은 기업이 제 이익과 관련된 일에서만은 ‘인간의 권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론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는 기업들의 정치인에 대한 매수와 로비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됐다. 사생활의 보호를 보장한 4조는 환경보호청의 화학공장 실사를 중단시킬 정도로 ‘기업 보호’에 악용됐다. 골목 상권을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은 평등한 보호를 보장한 수정헌법 14조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해달라는 백화점의 요구 앞에 무너졌다.
기업의 법인격 획득의 거침없는 역사와 그로 인해 한없이 불평등해진 세상의 모습을 샅샅이 보여주며 책은 “기업의 법인격을 무효화하는 것은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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