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여는 생각
단속사회
엄기호 지음
창비 펴냄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있는가.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이 아니다. 가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의 곁엔 누가 있었는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의 곁에는 왜 아무도 없었는가? 지금 이 시간, 페이스북에 온종일 접속해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올려놓는 젊은이는 왜 자기 곁의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엄기호(42)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는 <단속사회>를 통해 우리에게 ‘곁’을 묻는다. 그는 우리가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사회”에 살고 있다며 이를 ‘단속’이란 용어를 변주해 설명한다. 단속은 우선 ‘단속’(斷續), 끊어짐과 이어짐을 뜻한다. 책은 우리가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타인의 고통’처럼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단속은 또한 ‘단속’(團束)이다. 그리하여 단속은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양극화됐다. 옆 사람에게는 그저 ‘예의 바른’ 얼굴로 선을 긋는다. 부모나 동료에게도 무심하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중독자처럼 접속해 자신을 드러낸다. 정치적인 공동체는 붕괴되고 동일성만 추구하는 ‘취향의 공동체’만 소비된다. 공동체에서 ‘타자’로 찍혀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단속(團束)한다. 뉴스에 나오는 대량해고 사태나 학교폭력 사건에는 분노해도 ‘우리 회사’의 해고 문제나 ‘우리 학교’의 왕따 문제에는 침묵한다. 옆 사람들과 개인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이를 ‘공적인 논의’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단절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타인과 단절하고 익명과 접속하는 세상
내가 ‘어떤 의견’을 갖는 순간, 공동체 안에서 타자로 찍힐 수도 있다. 우린 해고에 맞서 투쟁하다 거액 손해배상금을 떠안은 노동자, 삶의 터전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걸 막으려다 경찰에 밀쳐져 넘어지는 노인들을 목격했다. 그렇게 자기검열과 침묵, 순응을 배웠다.
김정수씨는 “외롭다”고 했다. 그는 몇년 전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했다.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을 시작으로 하는 족족 망했다. 나이 50을 앞두고 남은 것은 막노동하다 다친 몸과 빚뿐이었다. 점점 삐딱해지는 그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집을 나갔다. 아이 둘 때문에 그는 ‘알바’라도 해야 한다. 힘들 때면 “많은 사람 속에 혼자일 수 있는” 찜질방에 간다. “이젠 친구를 만나도 오가는 말이 허망하기만 하”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소진되다 사라질 것”이라 말했다.
문화학자이자 연구활동가인 엄기호는 <단속사회>(창비 펴냄)의 첫머리에서 김씨의 사례를 들며 “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관계의 단절, 혹은 파편화되고 개인화된 사회라는 말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한다. “김씨의 삶이 학문을 통해 해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으로부터 학문이 해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켜 내놓은 단어가 ‘단속’이다. 그는 한국 사회를 ‘단속 사회’로 파악한다.
‘타인과의 단절’과 ‘타자성에 대한 자기 단속’은 ‘단속(斷續)’ 혹은 ‘단속(團束)’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김씨의 경우 회사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순순히 회사를 떠났다. 퇴직금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대기업의 부당한 대량 해고에는 분노할지 몰라도 자기 회사에서 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급기야 자기가 해고 대상자가 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이야기’가 ‘공적인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우리는 이런 순간들을 ‘외면’하곤 한다.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한 고등학생은 처음으로 교사에게 속내를 드러냈다가 상처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뒤로 더 타인 앞에서 나 자신을 단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중학교 국어교사는 권위적인 교장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그 문제에 소극적인 동료 교사들을 보며 문제 제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을 철학관에 가서 상담하며 풀곤 한다.
이렇듯 서로의 일에는 되도록이면 개입하지 않고 공적으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은이는 진단한다. ‘나’는 부딪힘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단속한다.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동질성’에 평온함을 느끼며 폐회로 카메라(CCTV)를 달아 낯선 자를 차단한다.
왜 이렇게 됐나? 내가 ‘어떤 의견’을 갖는 순간, 다른 이들이 나를 낯설게 보고 ‘타자’로 여길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타자로 찍혀 다른 구성원들의 ‘사냥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해고에 맞서 투쟁에 앞장서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회사에 기가 질린 노동자, 삶의 터전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이 세워지는 걸 막으려다 경찰에 밀쳐져 넘어지는 노인들을 목격했다. 하루아침에 인터넷 공간에서 ‘○○녀’로 찍히는 이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자기검열과 침묵, 순응을 배웠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렇게 ‘공적인 것’과 단절된 세상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유례없이 얄팍해지고 일시적이 되었으며 못미더운 것이 되었다.” 인간관계는 더는 믿음과 평안과 영적인 충족을 주지 못하며 대신 끝없는 불안을 생산해 ‘자기 단속’을 강화시킨다.
해고와 산재로 몸과 마음이 상한 김씨는 곁에 마음을 나눌 이가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동질성만을 기반으로 가벼운 ‘취향의 공동체’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친구들과 아무리 술자리를 가져도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며 ‘쓸데없는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할수록 ‘내 이야기’를 할 곳도 사라진다.
자기 경험을 공적 이슈로 전환하는
‘정치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모두 외로워졌다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그런 사회는 망한 사회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 누군가, 그 ‘곁’을 회복해
‘단속사회’에서 벗어나자 한없이 ‘사적인 것’으로 침잠하는 세상에서 말은 허망해졌다. 대화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마음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이와 과잉접속’한 상태다. 사람들은 제 고통과 상처를 이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하루종일 중계방송한다. 자기 곁의 사람에게 해야 했을 이야기를 유명인의 공개 상담이나 텔레비전 토크쇼를 통해 털어놓고 이는 ‘힐링’이란 구경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그나마 곁에 있는 가족은 오히려 악몽이 되기도 한다. 김씨를 ‘빈곤 노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부양해야만 하는 가족이다. 지은이는 “김씨나 소년소녀 가장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이주노동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근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에 있던 자식들이 방으로 흩어져 들어간다는 ‘바퀴벌레 가족’이란 용어도 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교육부터 노동까지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지루한 것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이야기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때문에 “우리는 시스템의 문제와 맞닥뜨릴 때도 ‘멘붕’이라는 용어를 통해 논의의 수준을 ‘개인의 멘탈’급으로 쪼그라뜨린다.” 성공도 개인 덕, 실패도 개인 탓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공적 논의로 진전하지 못하고 타인과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사회,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하다 내 삶의 연속성조차 잃은 사회, 앞세대가 뒷세대에게 전해줄 말이 없는 사회. 지은이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회는 망한 사회”라고 일갈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곁을 지키겠다는 일이 몽상이 되어가는 시대”에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밀양에 머무르고 있는 이계삼씨의 말은 울림을 준다. 그는 “우리가 빠지면 쌍용차처럼 어르신들이 계속 집단우울에 빠져 세상을 버릴 것 같다는 공포 때문에” 밀양 주민들의 곁을 지킨다고 말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사람은 죽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그 ‘곁’을 회복해 단속사회를 벗어나자고 책은 말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엄기호 지음
창비 펴냄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있는가. 누구의 ‘편’이냐는 질문이 아니다. 가난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의 곁엔 누가 있었는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의 곁에는 왜 아무도 없었는가? 지금 이 시간, 페이스북에 온종일 접속해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올려놓는 젊은이는 왜 자기 곁의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엄기호(42)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는 <단속사회>를 통해 우리에게 ‘곁’을 묻는다. 그는 우리가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사회”에 살고 있다며 이를 ‘단속’이란 용어를 변주해 설명한다. 단속은 우선 ‘단속’(斷續), 끊어짐과 이어짐을 뜻한다. 책은 우리가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타인의 고통’처럼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단속은 또한 ‘단속’(團束)이다. 그리하여 단속은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양극화됐다. 옆 사람에게는 그저 ‘예의 바른’ 얼굴로 선을 긋는다. 부모나 동료에게도 무심하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중독자처럼 접속해 자신을 드러낸다. 정치적인 공동체는 붕괴되고 동일성만 추구하는 ‘취향의 공동체’만 소비된다. 공동체에서 ‘타자’로 찍혀 사냥감이 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단속(團束)한다. 뉴스에 나오는 대량해고 사태나 학교폭력 사건에는 분노해도 ‘우리 회사’의 해고 문제나 ‘우리 학교’의 왕따 문제에는 침묵한다. 옆 사람들과 개인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이를 ‘공적인 논의’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단절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대도시의 전기 소비를 위해 삶의 터전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맞서고 있는 밀양의 노인들 곁에는 누가 있나. 사진은 지난해 10월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송전탑 건설 부지 터 주변 움막 농성장에서 공사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주민 김사래(85)·석금식(86·오른쪽)씨. 밀양/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치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모두 외로워졌다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그런 사회는 망한 사회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 누군가, 그 ‘곁’을 회복해
‘단속사회’에서 벗어나자 한없이 ‘사적인 것’으로 침잠하는 세상에서 말은 허망해졌다. 대화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마음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오늘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이와 과잉접속’한 상태다. 사람들은 제 고통과 상처를 이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하루종일 중계방송한다. 자기 곁의 사람에게 해야 했을 이야기를 유명인의 공개 상담이나 텔레비전 토크쇼를 통해 털어놓고 이는 ‘힐링’이란 구경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그나마 곁에 있는 가족은 오히려 악몽이 되기도 한다. 김씨를 ‘빈곤 노동’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부양해야만 하는 가족이다. 지은이는 “김씨나 소년소녀 가장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이주노동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근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에 있던 자식들이 방으로 흩어져 들어간다는 ‘바퀴벌레 가족’이란 용어도 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교육부터 노동까지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지루한 것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견디는 법’을 배우고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이야기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때문에 “우리는 시스템의 문제와 맞닥뜨릴 때도 ‘멘붕’이라는 용어를 통해 논의의 수준을 ‘개인의 멘탈’급으로 쪼그라뜨린다.” 성공도 개인 덕, 실패도 개인 탓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공적 논의로 진전하지 못하고 타인과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사회, 침묵과 순응으로 일관하다 내 삶의 연속성조차 잃은 사회, 앞세대가 뒷세대에게 전해줄 말이 없는 사회. 지은이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회는 망한 사회”라고 일갈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곁을 지키겠다는 일이 몽상이 되어가는 시대”에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밀양에 머무르고 있는 이계삼씨의 말은 울림을 준다. 그는 “우리가 빠지면 쌍용차처럼 어르신들이 계속 집단우울에 빠져 세상을 버릴 것 같다는 공포 때문에” 밀양 주민들의 곁을 지킨다고 말한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사람은 죽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그 ‘곁’을 회복해 단속사회를 벗어나자고 책은 말한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