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2014)
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2014)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눈을 뗄 수 없는 책이라니! 미국의 역사를 질펀한 섹스로 풀어내는 데 신의 경지에 오른 작가 필립 로스가 이번에는 책의 십분의 구를 자위와 성기에 바쳤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착한 유대인 아들은 어느 날 벌레로 변신했다. <포트노이의 불평>에서 착한 유대인 아들은 벌레가 되는 대신 자위에 심취한다. 부모님은 아들에게, 대략 요약해보자면 이렇게 말한다.
“얘야 고맙다고 말해야지, 얘야 죄송하다고 말해야지, 얘야 괜찮다고 말해야지, 얘야, 다 너를 위해서란다. 너도 부모가 되면 알 거야. 오, 우리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보답을 받아야 하지? 계속 이렇게 굴면 네 아버지는 심장마비에 걸릴 거고. 조심해라, 주의해라. 이건 하면 안 돼. 저건 할 수 없어.”
아들은 마침내 대략 이렇게 외친다.
“선생님,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내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내 자지뿐! 부모는 죄책감을 만들어내고 포장하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능력자. 다 나를 위해서라고요? 당신 삶이 이렇게 된 이유를 나에게서 찾지 마세요. 나는 당신 존재의 이유가 아니잖아요. 나는 아들이지만 공교롭게도 한 인간이기도 하다고요. 몇 년 안에 답답하고 꽉 막힌 인간을 만들어 내려면 헌신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부모와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듣는 어린아이가 필요한 겁니다.”
그러다가 또 대략 이렇게 기도한다.
“어떤 미친 새끼가 착하다는 말을 만든 거야? 남자가 되게 해주세요. 착하고 공부 잘하는 성공한 유대인 소년은 이제 됐어요. 남들 앞에서는 부모 비위나 맞추고 혼자 있을 때는 자지나 주물러대고 이런 건 이제 됐다고요.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 말고는 할 게 없는 걸까요? 부모들은 왜 자신의 감정이나 갈망이 아닌 다른 사람의 갈망이나 감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그러나 부모의 뜻을 위반해봤자 남는 것은 나를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버렸다는 죄책감뿐! 그에게는 대략 이런 질문이 남는다.
“야구에서 중견수로 뛸 때 가졌던 느낌, 그 편안함, 자신감,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느낌을 삶에서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요? 왜 그렇게 살 수 없는 건가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평이 진실의 한 형태일까요? 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변명해야 하죠? 왜 내가 방어적이 되어야 하나요?”
그는 ‘양심에 거슬리는 욕망, 욕망에 거슬리는 양심’이란 갈등 속에서 살게 되고 결국 사랑할 때도 이렇게 묻는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나? 혹은 사랑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그녀를 사랑해야 하나?’라고.
이 적나라하고 통렬한 안티 성장담, 끝없는 자기 이야기는 ‘분열’을 다룬다. 우리에게도 필립 로스 같은 절규가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살면 족하다고 들었는데 젠장, 자기 자신으로 살면 족한 게 어떤 건지를 배운 적이 없잖아요. 과거의 경험으로만 자신을 설명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미래에도 계속 과거처럼 살라고 하잖아요! 나는 끝없는 분열 속에 있잖아요. 온전하지도 강하지도 않고 죄책감 속에. 유대인 가족 이야기는 한국의 교육 이야기와 왜 이렇게 닮은 거지요?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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