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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의 아이들과 책섬에 가고 싶다

등록 2014-04-20 19:52수정 2015-11-03 00:36

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책섬
김한민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2014)
사는 것은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조차 비통한 눈물을 흘렸던 한주였다. 부족할 것 없이 정보가 넘쳐난다는 이 세상에서 빨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정보만은, 지금 꼭 필요한 그 정보만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절박하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꼭 필요한 도움을 줄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다가도 눈물이 난다. 어떻게 살려낼까? 나는 지금 뭘 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악몽과 공포인가? 재난인가? 이제 소년 소녀들은 행복감 속에 수학여행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의 공포스런 무의식이 될 것이다.

포르투갈에 사는 김한민 작가의 ‘책섬’엔 책 짓는 노인이 한명 살고 있었다. 책섬은 조금 춥고 그리고 인적이 드물고 황무지 같다. 인생 말년에 책 짓는 노인은 책 짓는 기술을 전수해줄 제자를 기다리다가 어렵게 만난다. 제자는 아주 어린아이인데 눈이 멀었다. 책 짓는 노인은 눈먼 아이와 함께 책을 짓는다. 땅 파는 동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파고 또 파고 파고 또 파고 잠깐 쉬고 또 파고. 이게 책 짓기의 시작이다. 책은 ‘파는 게 반’이다. 다행히 땅파기 귀재들은 좀 있었다. 땅돼지, 오소리, 굴곰, 고슴도치. 책 짓는 노인은 동물들에게 묻는다.

“이보게, 자네는 왜 책을 만드나?” 동물들은 손가락으로 저마다 옆에 있는 동물들을 가리킨다. 나? 난 너 땜에. 난 너 땜에. 난 너 땜에. 난 너 땜에. 너 땜에. 책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만가지. 내가 책을 써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는데 책을 쓴다. 문제 해결은 외면이 아니라 직면하는 것. 직면한 채로 문제를 견뎌내는 것. 버티는 데까지 버텨내는 것. 그렇게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책을 다 썼으면 책은 이제 그만 버려두기. 왜냐하면 책은 그때부턴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독자의 것이니까.

<책섬>은 책은 어떻게 읽나, 어떻게 쓰나에 대해 한 작가가 가지고 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믿음에 관한 책이다. 책은 우리가 그 안에 깃들어 사는 하나의 고독한 섬이다. 토대는 없는 게 아니라 있다. 파고 또 파고들어야 한다. 그 세계에서 제자가 눈이 멀어 있다. 눈이 멀었기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 그런데 그 걸려 넘어짐이 책읽기다. 이게 대체 뭐지? 이렇게 어리둥절한 채로 일어나 묻는 게 책읽기다. 어떤 독자가 책을 완성할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누구에게든, 아주 사소한 계기로든, 어떤 영원과도 같은 찰나에도 그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순간 나는 <책섬>이 독서론이 아니라 지금 꼭 필요한 인생론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지금 소년 소녀의 죽음과 실종이란 이야기에 걸려 넘어져 있다. 파편 같은 이야기들 속에 있다. 파편 같은 사랑의 기억 속에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로 그것들을 잃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 있다.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이야기들이 안타깝게, 간절하게 우리의 손끝에 매달려 있다. 해결해야 할 거대한 문제가 파도처럼 다가오고 있다. <책섬>이 질문한 것처럼 우리는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궁금하지? 왜 이렇게 염려하지? 왜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지? 너 땜에, 너 땜에, 너 땜에.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하나하나의 너들이 말할 수 없이 그립다. 아깝기 그지없는 시시각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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