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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등록 2014-05-18 19:21수정 2015-11-03 00:36

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이 폐허를 응시하라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펴냄(2012)
팽목항에 다녀온 한 기자가 내게 말했다. “비통한 공동체에 다녀온 것 같아요. 자원봉사자들이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공동체인데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슬픔이 있으니 슬픔의 공동체였어요.” 또 다른 기자는 말했다. “공기 중에 슬픔과 분노가 떠다니고 있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었어요. 그런데 실종자 가족들이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마음을 열었어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니까. 공감하고 같이 울면서 불신을 허물었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니 재난 시에 등장하는 슬픔과 선물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자발적인 시민들과 피해자들이 함께 꾸렸던 공동체)를 말했던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떠오른다. 책은 성경에 나오는 오래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느님이 카인에게 아우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면서 대답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아벨은 땅속에서 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책은 말한다. 오늘날에도 카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영원한 문제가 제기된다고.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하는가? 아니면 각자 알아서 앞가림을 해야 하는가?’ 최근의 인류역사는 사유화의 역사였다고 책은 말한다. 우리는 이미 사유화라는 일상적 재난 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세계 속에서 시민은 소비자가 되고 국가 개조는 주택 개조보다 덜 중요하고 공공선은 개인의 안녕보다 덜 중요했다. 사랑은 남녀관계에나 연애에만 쓰이는 말이 되어갔고 우리는 서로서로에 대해서가 아니라 대중매체 속 정보를 더 자주 화제에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재난 시에 우리는 일상적 관심에서 벗어난다. 재난은 ‘이 사회가 과연 가능성이 있는가?’,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재난 시에는 잠자고 있던 에너지와 일상생활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본성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무엇이든 도우려 하고 용기와 자율성을 보이고 물건을 나누고 꼭 필요한 역할을 이 사회 안에서 하고 싶어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인 믿음은 뭘까? 우리 사회를 만든 믿음은 뭘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존재가 아니라 각자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 아닐까? 두려움과 불안에 각자 맞서면서 살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불러왔고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생명을 구했다.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유족들의 가슴을 난도질하는 두 번째 재난을 불러왔다.

지금의 이 슬픔은 우리가 다른 사회에 살지 않는다면,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훌륭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각자 알아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같이 울 수 있으며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바로 그런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믿음에 따라 우리 일상의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변화시킨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세계는 우리 없이는 창조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개인이 무엇을 믿는가는 너무나 중요하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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