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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근대의 비극을 잉태하다

등록 2014-05-18 20:10수정 2014-05-18 22:47

한 주를 여는 생각

환원근대
김덕영 지음
길 펴냄
딱히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빈곤층 세 모녀, 장애인 아들에게 기초생활수급권을 주려고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며 유서를 남긴 초등학생, 잇따르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타살…. 한국 사회의 ‘지옥문’은 일찌감치 열려 있었다.

사회학자 김덕영(56) 독일 카셀대 교수는 “모든 것을 경제 성장으로 환원시킨 결과, 우리는 지금 ‘근대의 비극’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근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의 모든 잣대를 경제 성장에만 맞춘 ‘환원근대’였다. 국가와 재벌이 동맹을 맺으면서 나머지 분야의 절차와 합리성은 완전히 무시됐다는 것이다.

“‘국가가 대체 뭘 했나’라는 외침은 사실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김 교수는 풀이한다. 사람들을 죽도록 내버려둔 선장, 비합리성과 부패가 들끓는 각 분야의 총합이 ‘대한민국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무얼 해야 하는가? ‘국가개조론’을 내세우며 또다시 ‘환원근대’를 영구화하려는 노력에 저항하는 담론은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회학자 김덕영(56) 독일 카셀대 교수
사회학자 김덕영(56) 독일 카셀대 교수

세월호, 경제성장에 모든 걸 내준 기형적 근대의 산물

박정희의 선진국 담론은 경제성장으로 환원된다.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에 기반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 바로 이것이 박정희가 이해하는 근대화였다. 박정희의 선진국 이미지는 환원근대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또는 발명된 ‘서구’다. 그것은 환원근대적 몽타주다.

사회학자 김덕영(56) 독일 카셀대 교수의 끈질긴 이론 연구는 독일 학계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막스 베버(1864~1920), 게오르크 지멜(1858~1918) 등 근대 독일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론사회학을 반평생 넘게 파고들었다. 2012년 1000여쪽에 이르는 <막스 베버-통합과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을 찾아서>를 썼고, 지난해엔 그보다 더 두꺼운 <돈의 철학>을 우리말로 옮겼다.

<환원근대-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도서출판 길)는 그가 30년 동안 쌓아올린 이론적 연구를 한국의 근대화와 근대성에 적용한 것이다. 생각보다 짧은 300여쪽의 총론격 연구서인데, 근대화를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위개념으로 파악하고 우리가 어떤 근대화를 만들었는지, 남은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큰 테제를 던졌다. 이론적 분석틀로서 지멜과 베버 등 사회학 이론을 검토하며 ‘분화, 개인화, 합리화’라는 근대화 개념을 추출했다.

그는 “사회학의 거장들이 고민한 건 결국 ‘개인’에 대한 문제 같다”고 했다. 지멜은 중세(고대)사회와 근대를 구분하는 사회학적 특징을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서 찾았다. 근대인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것이다. 베버 또한 근대인이 가진 도덕의 원칙을 ‘책임윤리에 정초한 개인주의’라고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문제다. 근대 국가의 제일 가치는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사회’였지만 한국에선 개인이 자율적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도구나 수단일 뿐이었다.”

김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개인’은 가족, 기업, 국가와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없었다. 직장·국가는 개인을 감정적으로 결속시켜 대들지 못하게 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막고 노동을 통제했다.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간개조를 지향해 충성을 강요했다. 근대화의 과제로서 개인화와 함께 잇따라야 할 사회 기능과 가치의 분화도 한국 사회는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모두가 벼슬만 차지하고, 지위에 따른 합리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기능 분화란 각 분야가 합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 종교는 청빈한 삶을 실천하며 구원에 목적을 둬야 한다. 근대 시장엔 재벌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경쟁할 수 있어야 하고, 근대 노동자는 자유롭게 기업과 계약하며 퇴근 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경제성장 중심으로 환원돼 ‘분화’와 ‘개인화’라는 근대의 토대가 저지당했다. “근대화는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정치, 법, 과학, 예술, 윤리, 종교, 교육, 가족, 에로스 등 다양한 삶의 영역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지만, 한국은 모든 것을 경제성장에 맞추는 ‘환원근대’ 사회였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재벌이 주체로 환원된 ‘이중적 환원근대’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기우뚱한 ‘환원근대’의 설계자는 누구인가? 그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시작한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에 혐의를 둔다. 근대의 토대를 ‘전통’에서 찾아 ‘유순하고 복종적인 신민’을 만들었다. 합리적 시장, 노동조건, 합리적 경제정책, 분배와 복지 등의 근대화는 철저히 버림받았다.

한국 사회는 ‘분화’와 ‘개인화’라는
근대의 토대가 저지당했다
쿠데타 없이, 유신 없이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라도 겪었으면
근대화를 학습할 수 있었다
반근대적 발상을 가진 국가개조론에
포섭되지 않는 틀을 탐색해야 한다
실마리는 ‘근대적 개인’에 있다

“정치 영역의 근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민주적 절차다. 쿠데타 없이, 유신 없이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라도 겪었으면 한국 사회는 근대화를 학습할 수 있었다. 두번의 환원 탓에 근대화가 멀어졌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다.”

김 교수는 근대화를 왜곡한 분야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을 이어간다. 특별히 ‘삼성’이란 재벌이 저지한 근대화의 과정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삼성은 ‘계약’이라는 근대적 논리 대신, ‘가족’이라는 논리로 반근대적인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는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이나 각 분야의 기능 분화를 막아섰다. 특혜를 입으며 국가-재벌 동맹에 복무한 대형교회, 인간을 도구적으로 기르는 데 쓰인 교육 또한 ‘환원근대’의 산물이었다. ‘7·4·7’ 공약, ‘4만달러 시대’는 환원근대의 언어이며, 케이팝이나 아이돌 그룹의 대량생산은 인간의 영혼과 삶이 함몰되는 ‘공장사회’의 원리라고 분석한다.

그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 여러 논쟁점을 던진다. 그는 합리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강조하며 근대성에 대해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김 교수가 ‘허약한 국가’, ‘강력한 국가’로 재현하는 국가론은 ‘국가개조’, ‘경찰국가’ 담론과 혼동된다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남은 일은 “환원근대를 영구화하려는 반근대적 발상”을 가진 박근혜 정권의 국가개조론에 포섭되지 않는 근대의 틀을 탐색하는 것이다. 실마리는 ‘개인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다. 김 교수는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가 만든 ‘환원근대’ 속에서 어떤 개인도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적 개인’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개인들의 사회는 ‘사회 개인’이 모인 것보다 더 강력하다. ‘국민소득 몇만달러’라는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가 자율적 존재로서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최소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의 잇단 자살이나, 부양의무자 때문에 기초보장수급권이 뺏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비정규노동자, 농민, 여성 등도 당당한 근대화의 주체, 주연이 돼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근대성과 근대적 합리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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