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2014)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2014)
<플로베르의 앵무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저자 줄리언 반스는 세상을 이렇게 나눠봤다.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는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는 고독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눠봤다. 사랑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고독과 사랑했던 사람을 빼앗겨서 느끼는 고독. 첫번째 고독이 누군가에 대한 열망이라면 두번째 고독은 정확히 그 반대다. 그 특별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는 30년을 함께 산 아내와 사별했다. 최초의 감정은 ‘무심함에 대한 분노’였다. 어쩌면 사람들은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심한가? 이제 막 세상이 변하려는 참인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가온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었던 사람들,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사람들. 그 다음은 무관심이다. 세상이 그녀를 구하지 못했는데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사별 이후 비탄의 감정은 상상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녀와만 공유했던 어휘, 말장난, 둘 사이에만 통했던 장난, 유치함, 장난섞인 핀잔. 이 모든 인생의 모호한 참고 자료들을 잃었고 일상을 일상이게 했던, 둘이서 함께 쌓아올린 ‘패턴’을 잃었다.
시간도 기억도 바뀐다. 마지막 일들에 대해서만 예리하게 기억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산 옷, 마지막으로 읽은 책, 마지막 이것, 마지막 저것, 마지막 말. 자살, 그것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 유혹은 떨쳐냈다. 만약 그녀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바로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하는 것이니까. 내가 자살하면 나뿐만 아니라 그녀도 죽이는 결과가 되니까.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것도 아내가 살아 있다면 그러길 바랐을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그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되는데, 그것은 어느 순간에는 둘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 보라. 그들은 각자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인가는 세상이 다시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애도의 시기를 지난 것인가? 그렇다면 성공적으로 애도를 마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질문들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질문들이 남아 있는 한, 그 질문들 속에서 매번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 한 사랑은 아직 그렇게 끝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서점에는 유혹의 기술, 연애의 기술, 사랑의 시작을 다루는 책은 넘쳐나지만 사랑의 지속, 사랑의 끝을 말하는 책은 드물기만 하다. 이 책은 애도에 관한 글이지만 무척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어 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은 우리가 몰랐던 높이와 우리가 두려워하는 깊이로 우리를 이끈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함께 변해간다.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 그것은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깊이의 상실이라고 줄리언 반스는 말한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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