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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평등 해소’ 타는 목마름…이유 있는 ‘피케티 열풍’

등록 2014-08-31 20:14수정 2014-08-31 21:38

한 주를 여는 생각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오는 12일 한국어로 독자를 찾아간다. 하버드대에서 나온 영어본을 저본 삼았다. 지난주 출판사는 아직 편집이 덜 끝난 ‘가제본’판 상태로 이 책을 언론사에 돌렸다. 조금이라도 일찍 책을 받아보려는 언론사가 많았다는 뜻이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번역본이 나오는 한국의 ‘피케티 열풍’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린 왜 이렇게 피케티 책에 관심이 많은가. 제아무리 ‘스펙’ 좋아하는 한국인이라 해도 단지 그가 22살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된 천재 경제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닌 주류 경제학에서 ‘불평등’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때문 아닐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파산선고를 받았는데도 아무도 이를 대체할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주류 경제학 쪽에서 먼저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피케티는 그동안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 상찬받을 만하다. 자본주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통계치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역사와 구조, 미래를 분석한 것이다. 피케티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21세기 세습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토빈세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누진적 자본세 도입을 주창한다. “새로운 자본축적을 촉진하기 위한 경쟁과 유인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열풍에 이어 피케티 열풍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우리는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너무 쉽게 식는 것 아닌가. 열풍을 담론으로, 담론을 정책과 비전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21세기 ‘세습 자본주의’에 내리는 극약처방

피케티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21세기 세습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비롯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에 부과하는 누진세가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피케티가 통계에 치중하는 이유는 “데이터 없는 토론”의 허망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글항아리 제공
피케티가 통계에 치중하는 이유는 “데이터 없는 토론”의 허망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글항아리 제공

책의 깜냥은 지은이의 이력과 제목만 보면 절반은 알 수 있다.

22살에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발탁돼 ‘잘나가던’ 경제학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국 주류 경제학계의 ‘수학 모델’ 게임에 넌더리를 느껴 미국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21세기 자본>(글항아리 펴냄)은 이미 잉태되었던 게 아닐까. 프랑스로 돌아간 토마 피케티(43·파리경제대학 교수)가 경제학의 가장 중대하고도 실제적 문제인 ‘부의 분배’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 약 150년 전 같은 문제를 궁구한 카를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의 21세기 판본인 것처럼 읽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피케티는 단호했던 마르크스와는 달리 신중하고도 겸손한 어조로 이 시대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대로 놔둘 경우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에둘러 경고한다. 스스로 “유토피아적 이상”이라고 폄하하는 “세계적 자본세 신설”을 대안으로 꺼내든 이유다.

전체 소득 중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세기 후반 유럽서 7배로 솟았다가
1914년부터 1949년까지 줄어들더니
1980년부터 다시 가파르게 늘어
2010년 현재 4~6배에 육박하고 있다

자본의 수익률은 성장률보다 늘 높아
자본주의는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누진적 자본세를 물리자
먼저 유럽에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21세기 자본>의 가장 큰 특징은 자본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부에 관한 통계와 오노레 드 발자크, 제인 오스틴을 비롯한 문학 작품(때로는 미국 드라마까지)을 아우르는 “폭넓은 필치”다. 이 두가지 특징은 이 책이 논쟁의 중심에 선 학술서이자 경제학을 잘 모르는 독자도 찾게 하는 대중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피케티는 학계와 대중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반 독자도 알기 쉽게 썼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만 있다면 충분히 완독할 수 있을 정도다. 비슷한 통계를 범주에 따라 다르게 반복하는 대목은 과감히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부의 분배’를 연구하기 위해 피케티는 동료 교수, 대학원생들과 함께 무려 15년(1998~2013)의 노력 끝에, 300년에 걸친 자본주의 역사에서 상속세 신고서를 비롯한 과세 자료를 긁어모아 시계열 자료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자본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α)과 ‘자본/소득 비율’(β)을 도출해 낸다.

피케티에게 전체 국민들이 벌어들인 돈 가운데 자본(금융자본, 사업자본, 부동산을 포괄한 개념)이 벌어들인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일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이 심해질수록 불평등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피케티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공식은 딱 세가지다. α=r×β, β=s/g, r>g. ‘자본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α)은 자본수익률(r)에 자본/소득 비율(β)을 곱한 값(α=r×β)인데, 여기서 자본/소득 비율(β)은 저축률(s)을 성장률(g)로 나눈 비율(β=s/g)이다.

갑자기 수학이 등장한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의미없는 수학 문제 풀이를 증오하는 피케티인 만큼 쓸데없는 공식은 쓰지 않는다.(피케티처럼 의미없는 수학 문제 풀이를 증오하며 기술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중시하는 학자가 하나 더 있다. 그 이름은 장하준이다.)

피케티와 그의 동료들이 모은 자료를 보면, 유럽지역의 자본/소득 비율(β)은 19세기 후반 7배까지 치솟았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인 1949년까지 꾸준히 줄어들며, 1980년부터 다시 가파르게 늘어 2010년 현재 4~6배에 육박하고 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초기만 놓고 보면, 부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모든 시계열 그래프는 U자형이다. 전체 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이 줄었다가 다시 늘고 있다, 즉 불평등의 정도가 20세기 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1950년대에 같은 방법론으로 경제를 분석했던 쿠츠네츠의 역U자이론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1914~1949년에 자본이 주춤했던 것은 두번의 전쟁으로 기반·생산시설이 파괴되고 외국 국채가 휴지가 되었으며,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혁명적으로 도입한 누진세 등이 불로소득의 비중을 낮췄기 때문이다. 1950년부터 1980년까지 30년 동안은 기본적으로 자본소득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긴 했지만, 워낙 성장률이 높았고,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컸을 때라 곡선의 기울기는 완만했다. 그러나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포장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은 다시 뚜렷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발견. 자본의 연평균 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항상 높다는 부등식(r>g)이다. 자본주의가 불평등해질 수밖에 없는 속성을 드러내는 법칙이다. 이는 자본주의 모든 역사에서 확인되는 법칙이자 미래에도 관철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피케티는 강조한다. 가만히 두면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고,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는 “민주사회와 그 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회정의의 가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 강력한 양극화의 힘”으로 작용한다는 게 피케티의 결론이다. 가만히 두지 않는 방법은 누진적 자본세를 해마다 물리는 것이다. 피케티는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므로, 유럽에서라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피케티는 “나는 ‘경제과학’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 ‘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한다”며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나 자본/소득 비율의 곡선을 언뜻 보기만 해도 정치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결국 피케티는 이렇게 말하려는 게 아닐까.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책은 9월12일 시중에 깔릴 예정이며 지금은 예약판매 중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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