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리처드 테일러 지음, 홍선영 옮김/마디 펴냄(2014)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이주가 지났는데도 새해 소원은 생각도 못해 보고 살다가 티볼리 출시를 앞두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오체투지 행진을 하는 현장에 갔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아이들과 약자들과 동료들을 위해서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이 냉기 가득한 길바닥에 엎드려 뻣뻣하게 얼어붙는 그런 밤이었다. 네거리 코너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체투지를 함께 하던 조현철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제발 위에서 명령이 내려온다고 생각 없이 따르지 마십시오. 이 점을 잊지 마세요.” 이 말은 오체투지 행진단에 건넨 말이 아니었다. 행진단을 에워싸고 있는 앳된 경찰들에게 부탁하는 말이었다. 경찰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라 흔하디흔한 강연장에서 들었다면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밤의 나에게는 “여러분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잊지 마세요”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고 남이 만든 가치를 받아들이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남들이 인정해줘야 안심하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생각의 테두리에 머물며 어떤 모험도 하지 않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을까?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매일매일 발전 없이 똑같이 살기를 그만둘 수도 있을까? 내가 그날 밤 생각했던 ‘소중함’을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라면 ‘자부심’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자부심’이고 ‘자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다. 방점은 ‘정당한’에 찍힌다. 그는 애써 평범해지려고 하지 말라,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비슷비슷한 존재, 어디에나 있는 존재가 되려고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열정도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면 자부심은 근거 없는 망상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란 것이 남들의 뜻과 인정에 반응한 결과라면 자부심이 높기는커녕 남들의 노예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당한 자부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당신이 살아온 방식, 이룬 것들이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진심으로 선언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스스로를 정당하게 사랑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어떻게 스스로 이루어낼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내가 내 삶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내 삶을 창조하게 하기는 쉽고,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하고 아무런 열정도 없이 살기도 쉽다. 그러나 온 마음과 힘을 다하고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가치를 키우기는 어렵다.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일어날 유일한 사건인데도, 누구나 훌륭한 어떤 것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마치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
이 새해에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원을 생각하듯 이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나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이루고 싶지? 어떤 삶을 창조할 수 있지?’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리처드 테일러 지음, 홍선영 옮김/마디 펴냄(2014)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이주가 지났는데도 새해 소원은 생각도 못해 보고 살다가 티볼리 출시를 앞두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오체투지 행진을 하는 현장에 갔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아이들과 약자들과 동료들을 위해서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이 냉기 가득한 길바닥에 엎드려 뻣뻣하게 얼어붙는 그런 밤이었다. 네거리 코너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체투지를 함께 하던 조현철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제발 위에서 명령이 내려온다고 생각 없이 따르지 마십시오. 이 점을 잊지 마세요.” 이 말은 오체투지 행진단에 건넨 말이 아니었다. 행진단을 에워싸고 있는 앳된 경찰들에게 부탁하는 말이었다. 경찰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라 흔하디흔한 강연장에서 들었다면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밤의 나에게는 “여러분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잊지 마세요”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하고 남이 만든 가치를 받아들이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남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남들이 인정해줘야 안심하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생각의 테두리에 머물며 어떤 모험도 하지 않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을까?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매일매일 발전 없이 똑같이 살기를 그만둘 수도 있을까? 내가 그날 밤 생각했던 ‘소중함’을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의 저자 리처드 테일러라면 ‘자부심’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자부심’이고 ‘자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사랑이다. 방점은 ‘정당한’에 찍힌다. 그는 애써 평범해지려고 하지 말라,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비슷비슷한 존재, 어디에나 있는 존재가 되려고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열정도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면 자부심은 근거 없는 망상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란 것이 남들의 뜻과 인정에 반응한 결과라면 자부심이 높기는커녕 남들의 노예일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당한 자부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당신이 살아온 방식, 이룬 것들이 모두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진심으로 선언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스스로를 정당하게 사랑할 수 있다.”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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