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헌재 재판관들의 민낯

등록 2015-03-26 20:54

2014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 참석한 재판관들. 다수의견 재판관들은 정부 쪽 증인들의 추측과 의견성 증언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해 유도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4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 참석한 재판관들. 다수의견 재판관들은 정부 쪽 증인들의 추측과 의견성 증언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해 유도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증거재판 온데간데없고
재판관이 추측·의견 부추기기도
이재화 변호사의 1년 기록
“결론 예단한 파시즘적 판결”
해산해야할 것은 전체주의 사고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
이재화 지음/글과생각·1만5000원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을 다룬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말했는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에 해당하는 정당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우린 너무 조용히 있었던 게 아닐까. 이 기이한 침묵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혹시 잘못 말했다가 종북주의자로 몰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통합진보당 같은 종북주의 무리는 이제 좀 꺼져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정이 무엇이든 우리는 너무 적게 말했고, 통합진보당의 울부짖음은 진공관 안에 갇혀 묵음처리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다.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재판에 참여한 이재화 변호사가 쓴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은 이 침묵과 공포, 체념과 무관심을 향해 던지는 돌멩이의 외침이자 처절한 체험 수기다. 이 변호사는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군사작전처럼 해치워버린 초유의 정당 해산 심판과정에서 직접 겪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민낯을 증언한다. 법률가로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하지만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무엇보다도 증거를 중시해야할 법정에서 추측과 의견이 속출했고, 재판부가 이를 방조했을 뿐더러, 오히려 가세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은 남파 간첩 출신 곽인수(가명 김동식)에게 이렇게 묻는다. “남한에서 지금 얘기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 사건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증인은 이것이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건지, 북한에서 전파되어 왔다고 보는 건지 (…) 말해 달라.”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강령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은 2011년 6월이고, 곽인수가 남파된 것은 1990년이다.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동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파 간첩에게 재판관이 20년 뒤의 일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인수는 “내 생각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북한에서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추측성 답변을 했다. 이는 증인신문을 하기 전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밝힌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질문과 답변이다.(“오늘 하게 될 증언은 증인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 직접 보거나 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이 만약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경험한 것처럼 증언하거나 기억이 불분명하거나 없는데도 명확한 것처럼 진술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공안검사 출신의 안창호 재판관은 정부 쪽 증인들에게 “(한 때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반면 통합진보당 쪽에 유리하게 드러난 증거나 증언은 다수의견 결정문에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쪽 증인이 출석하면 다수 재판관들은 졸기도 했다. 이 변호사가 “증거재판은 온데간데 없고 사상검증재판이 난무했다. 재판관들은 미리 결론을 내놓고 형식적으로 재판하는 시늉만 냈다”고 분개하는 이유다.

정부는 2013년 8월 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뒤 석달 만인 11월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이듬해인 2014년 1월28일 제1차 변론기일을 연 데 이어 같은 해 12월19일 최종결정을 강행했다.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사천리로 해치워버린 것이다. 17만5천 쪽이나 되는 방대한 재판기록을 검토하는 데만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결정문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결정문을 ‘경정’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헌재는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최종 결정일을 12월19일로 잡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념 기념선물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고, 정윤회 등 비선의혹으로 곤경에 빠져있던 박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라는 정치적인 해석도 있지만, 지은이가 가장 무게를 싣는 쪽은 대법원 판결과의 관련성이다. 이듬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는 속셈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결국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선동만 인정하고 내란음모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아르오(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헌재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이라고 심판해 버렸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결론을 예단하고 퍼즐을 맞춰간 기획된 해산이며 의도된 오판”이라며 “파시즘적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이재화 변호사.
이재화 변호사.
이 변호사는 헌재의 최종 결정이 ‘숨은 목적론’과 ‘주도세력론’을 설파한 정부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퍼즐 맞추기’를 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정부 쪽은 공개된 통합진보당의 강령에서 친북혐의를 찾기 어렵자 “숨은 목적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이석기 등을 주도세력으로 상정해 그들의 목표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통합진보당의 위헌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이 변호사는 당원이 10만명이나 되는 공개 정당에 숨은 목적이 있을 수 없고, 만약 있다면 그걸 찾아내야 입증이 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정부 쪽이 ‘주도세력’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인사가 주도세력에 포함되어 있는 등 주도세력의 범주도 오락가락한다.

헌재 결정문의 다수의견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트위터를 고의로 왜곡하기도 했다. “이정희(당대표)는 …… 자신의 트위터에 연평도 포격에 대하여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를 정부는 똑똑히 봐야 한다.’고 발언했고 …… 북한의 무력도발과 관련하여 오히려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같은 트위터에서 “북이 이래서는 안됩니다. 전쟁은 불행을 가져올 뿐입니다.”라고 밝히는 등 북한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의 결론과 맞지 않는 내용을 삭제한 것이다.

헌재 다수의견은 위헌의 기준을 우리 헌법이 아니라 북한 주장과의 유사성 여부에서 찾았다. 그러다보니 재판 과정은 전향자들의 잔치판이 돼버렸다. 유력한 증거는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개인과 정당의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는 낡은 안보론이 모든 판단의 꼭대기에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유엔마저 대표적 악법이라고 지목한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게 됐다. 색깔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종북몰이’라는 광기의 폭력에 민주화의 산물인 헌재가 앞장 선 꼴이다. 정말 해산해야 할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헌재와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닐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1.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2.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3.

“알고 보면 반할 걸”…민화와 K팝아트의 만남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4.

인상파 대가 오지호 명작 ‘사과밭’과 ‘남향집’의 엇갈린 뒤안길

조성진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5위…서울은 가장 뜨거운 음악도시 5.

조성진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5위…서울은 가장 뜨거운 음악도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