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 참석한 재판관들. 다수의견 재판관들은 정부 쪽 증인들의 추측과 의견성 증언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해 유도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증거재판 온데간데없고
재판관이 추측·의견 부추기기도
이재화 변호사의 1년 기록
“결론 예단한 파시즘적 판결”
해산해야할 것은 전체주의 사고
재판관이 추측·의견 부추기기도
이재화 변호사의 1년 기록
“결론 예단한 파시즘적 판결”
해산해야할 것은 전체주의 사고
이재화 지음/글과생각·1만5000원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을 다룬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던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말했는가.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에 해당하는 정당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우린 너무 조용히 있었던 게 아닐까. 이 기이한 침묵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혹시 잘못 말했다가 종북주의자로 몰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통합진보당 같은 종북주의 무리는 이제 좀 꺼져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사정이 무엇이든 우리는 너무 적게 말했고, 통합진보당의 울부짖음은 진공관 안에 갇혀 묵음처리된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다.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재판에 참여한 이재화 변호사가 쓴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은 이 침묵과 공포, 체념과 무관심을 향해 던지는 돌멩이의 외침이자 처절한 체험 수기다. 이 변호사는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군사작전처럼 해치워버린 초유의 정당 해산 심판과정에서 직접 겪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민낯을 증언한다. 법률가로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하지만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터져나오기도 한다. 가장 황당한 대목은 무엇보다도 증거를 중시해야할 법정에서 추측과 의견이 속출했고, 재판부가 이를 방조했을 뿐더러, 오히려 가세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은 남파 간첩 출신 곽인수(가명 김동식)에게 이렇게 묻는다. “남한에서 지금 얘기하고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 사건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증인은 이것이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건지, 북한에서 전파되어 왔다고 보는 건지 (…) 말해 달라.”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강령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은 2011년 6월이고, 곽인수가 남파된 것은 1990년이다.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노동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파 간첩에게 재판관이 20년 뒤의 일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곽인수는 “내 생각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북한에서 전파되었다고 생각한다”라며 추측성 답변을 했다. 이는 증인신문을 하기 전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밝힌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질문과 답변이다.(“오늘 하게 될 증언은 증인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증인이 직접 보거나 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증인이 만약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경험한 것처럼 증언하거나 기억이 불분명하거나 없는데도 명확한 것처럼 진술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공안검사 출신의 안창호 재판관은 정부 쪽 증인들에게 “(한 때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반면 통합진보당 쪽에 유리하게 드러난 증거나 증언은 다수의견 결정문에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쪽 증인이 출석하면 다수 재판관들은 졸기도 했다. 이 변호사가 “증거재판은 온데간데 없고 사상검증재판이 난무했다. 재판관들은 미리 결론을 내놓고 형식적으로 재판하는 시늉만 냈다”고 분개하는 이유다. 정부는 2013년 8월 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뒤 석달 만인 11월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이듬해인 2014년 1월28일 제1차 변론기일을 연 데 이어 같은 해 12월19일 최종결정을 강행했다.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사천리로 해치워버린 것이다. 17만5천 쪽이나 되는 방대한 재판기록을 검토하는 데만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결정문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결정문을 ‘경정’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헌재는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최종 결정일을 12월19일로 잡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념 기념선물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있고, 정윤회 등 비선의혹으로 곤경에 빠져있던 박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라는 정치적인 해석도 있지만, 지은이가 가장 무게를 싣는 쪽은 대법원 판결과의 관련성이다. 이듬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려는 속셈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결국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선동만 인정하고 내란음모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아르오(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헌재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이라고 심판해 버렸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결론을 예단하고 퍼즐을 맞춰간 기획된 해산이며 의도된 오판”이라며 “파시즘적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이재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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