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잔치
안재성 기록/주목·1만5000원
장편소설 <파업> <사랑의 조건>의 소설가 안재성이 쓴 <거짓말 잔치>는 소설이 아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전말기’라는 부제를 달고 벌써 소설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컨대 이 책은 소설가가 기록한 한편의 역사서로서, 경찰 조서와 재판 기록, 진실화해위원회 조서 등 “온전히 공식적인 자료들”에 기초해 감정과 상상을 최대한 배제한 채 사실만이 빼곡하다. 안재성은 담백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서술로 1991년의 분신정국에 우리를 초대한다.
“그날 아침, 한 청년이 죽었다.” 첫 문장부터 긴박하다. 어버이날이었던 5월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과 함께 투신자살한 이 청년이 누구인지, 당시 현장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의문에 휩싸인다. 청년은 당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었다.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 등은 당연히 서강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어떻게 남의 학교에 들어와 일을 벌일 생각을 했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특히 유서에서 전민련 간부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점에 주목해 배후설을 확신하고 같은 날 낮 12시30분 별다른 증거도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사실은 같은 날 오전 10시께 청와대에서 열린 치안관계 회의에서 이미 배후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불과 열흘 사이에 다섯명이 죽자 치안기관들은 배후세력이 죽음을 사주하고 있다는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있었다. 법무부 장관 김기춘 등이 참석한 이 회의가 끝난 뒤 검찰총장 정구영은 검찰에 긴급명령을 하달한다. ‘최근의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 분신의 경위에 의혹이 있을 뿐 아니라 타살 가능성마저 있음.’
서울지검장 전재기는 즉시 명령을 받들어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김기설 분신 사건을 강력부에 배당한다. “보통 공안부에 맡기는 정치적 사건을 마약사범과 조직폭력배를 다루는 강력부에 넘긴 것은 이례적이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은 이 사건이 정치사건이 아닌 살인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재기는 국과수의 필적감정 결과가 나온 뒤 부장검사회의에서 “이 사회에는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고 있다. 검찰은 국가 최고 권력 집행기관의 자격으로 이런 악마를 응징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전 검찰 직원들이 강기훈을 유서대필 진범으로 확신한 상태에서 동요 없이 수사에 임하라”고 훈시하기도 했다.
분신자살한 김기설의 장례식 운구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모든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이 기록에서 가장 혁혁한 활동을 보여주는 인물은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수석검사 신상규다. 그는 김기설의 여자친구 홍성은을 조사하면서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는 진술을 받아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신상규는 집요한 유도심문과 협박, 회유, 잠 안재우기를 동원해 자포자기성 답변을 이끌어낸 뒤 스스로 창작한 문장을 조서에 옮긴다.
검찰은 유서가 김기설 본인 것임을 입증하는 자료들은 철저히 무시한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남기춘 등이 김기설의 군복무 시절 근무지를 찾아가 확보한 김기설의 수첩 메모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메모는 맨눈으로 봐도 유서와 똑같았다. 메모와 유서를 동시에 본 군대의 여러 장교들도 같은 글씨라고 말했고, 검사들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수첩 메모를 국과수에 필적감정을 의뢰하지 않았고, 법정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강기훈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직접 유서를 베껴 쓰는 시필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담당검사인 박경순도 나란히 앉아 유서를 베껴 썼다. 나중에 유서 원본과 비교할 때 박경순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야, 이거? 내 글씨가 가장 똑같네?” 강기훈의 글씨는 스무 번을 반복해서 써도 유서와 확연히 달랐는데 박경순의 글씨는 유서와 너무나 흡사했다. 이를 확인한 부장검사 강신욱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누가 이딴 짓 하라고 했어? 때려치워!” 강신욱은 시필한 종이들을 몽땅 빼앗아 자기 손으로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시필은 없던 일이 되었다.
남기춘 밑에서 주먹으로 범죄를 입증하는 수사관이었던 주사보 라종규는 평소 친분이 있던 부장검사 강신욱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영감님 아무리 봐도 강기훈이는 유서대필범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신욱은 벌컥 화를 냈고, 라종규는 한동안 사건 수사에서 배제됐다.
검찰은 언론의 관심 대상인 강기훈을 본격 고문하지는 못했지만 욕설과 함께 따귀를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는 식의 저강도 고문을 일삼았고, 애인 이영미에 대한 추잡한 거짓말을 만들어 심리를 교란하려 들었다. 불에 탄 김기설 사진을 책상 위에 쭉 깔아놓고 강제로 들여다보도록 하기도 했다. 이영미와의 이간질이 통하지 않자 이영미 아버지에게도 거짓말을 만들어 강기훈을 비난했다. “그놈이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감옥에서 나온 후 차버린 나쁜 놈이에요. 아주 질이 나쁜 놈입니다.”
검찰의 기소 한달 만인 1991년 8월22일부터 시작된 재판을 진행한 판사들도 검찰과 한 몸이었다.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묵살하기 바빴다. 홍성은이 강압에 못 이겨 했던 허위진술을 재판에서 뒤집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변호인 쪽의 필적검사 결과나 전민련이 제출한 추가 자료를 일체 채택하지 않았다. 특히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임대화는 검사 이상의 확신을 갖고 증인들을 몰아붙였다.
이밖에 1991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실장으로 ‘가슴’으로 감정한다는 명언을 남긴 김형영, 검찰의 말만 믿고 강기훈과 전민련의 주장을 묵살했던 언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부르짖었던 김지하 등 주연급 조연들이 등장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은 서울고법의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고를 대법원이 지난 5월14일 논평 없이 기각함으로써 끝이 났다. 24년에 걸친 진실 투쟁이 박근혜 정부에서 막을 내리게 된 것은 역설적인 의미에서 상징적이다. 유서대필 사건 조작 당시 핵심적인 구실을 했던 인사들이 박근혜라는 이름과 함께 화려하게 재등장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은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대법관을 지낸 강신욱은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신상규는 인천지검장과 광주고검장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 들어 대검찰청 사건평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남기춘은 서울서부지검장을 지내고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클린검증제도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수사팀 소속 검사였던 곽상도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희대의 마녀사냥으로 진실을 짓밟고 모욕했던 이들이 이 정부의 핵심들이다. 이들은 전혀 뉘우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권력자들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가 기억과 연대라면, 이 책은 훌륭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