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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등록 2015-06-11 21:07수정 2015-06-11 21:07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결혼한 게이 커플 김조광수(왼쪽)와 김승환.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운 지난 10년 동안 자신들의 사랑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시대의창 제공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결혼한 게이 커플 김조광수(왼쪽)와 김승환.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운 지난 10년 동안 자신들의 사랑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한다. 시대의창 제공
첫 공개결혼 게이커플
각자 살아온 이야기 지나
맞잡은 손만으로 안도감 느끼는
단단한 신뢰의 사랑에 대하여
광수와 화니 이야기
김조광수·김승환 지음/시대의창·1만3800원

염장, 제대로 지른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영화 제작자 김승환 부부는, 길 가는 이 누구라도 붙잡고 “우리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격정과, 맞잡은 손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서로의 깊은 신뢰를 이 책에서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들은, 동성애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동성결혼에 관한 제도적 불비와 함께 맞서 싸운 지난 10년 동안 자신들의 사랑이 갈수록 달콤하고 단단해져왔음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이야기한다.

2013년 9월7일, 서울 광통교에서 2천여명의 하객이 모인 가운데 두 사람은 국내 최초로 게이 커플의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의 이름은 ‘당연한 결혼식’. 하지만 결혼 준비 과정과 이후 법적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은 이들의 결혼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장벽투성이였다.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인정해준 부모지만, 그 사실이 이웃에 알려지는 건 원치 않았기에 공개 결혼식을 허락받기는 쉽지 않았다. 축하해주러 오겠다는 이들도, 동성애 혐오자들의 비난을 우려해 공개적인 하객 명단에는 올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결혼식 당일엔, 식이 진행되는 무대로 동성애 혐오자가 난입해 오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혼인신고는 말할 것도 없이 거절당했다. 그래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이들에게 이 결혼은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당연한 결혼식을 올린 뒤 “남과 다른 성 정체성 탓에 고민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보상되었다”(김승환)고 감격하고, “우리의 결혼으로 대한민국이 조금 더 로맨틱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김조광수)고 기원한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같다. 제아무리 이름난 영화감독도, 후광이 비치는 사람에게 한눈에 반한 뒤 달뜬 마음은 어쩌지 못한다.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스물한살의 김승환을 처음 마주친 마흔의 김조광수는, 행여 그가 글을 남겼을까 밤새 ‘친구사이’ 홈페이지에 매달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고, 그의 미니홈피를 멍하니 바라본다. ‘휴대폰이 안 보인다’는 뻔한 말로 그의 전화기를 빌려 번호를 따내고선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하나? 아니면 문자를 보낼까?” 전전긍긍하며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 만지작대고, “그가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머리가 하얘지고 어쩔 땐 울컥 눈물도” 나는 날들이 여섯달이나 계속된다.

처음부터 그들이 자신을 온전히 인정한 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형제가 “호모들”이라는 이유로 동네에서 쫓겨난 뒤, ‘호모가 뭐냐’고 묻는 김조광수에게 선생님은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이고 병 옮으니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답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첫사랑 해성이를 만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면서, 그러잖아도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사춘기 소년은 당혹감과 괴로움으로 우울해져만 갔다. 몇 번을 망설이다 고민을 털어놓으려 문의한 ‘사랑의 전화’에선 동성을 좋아하는 게 “나쁜 짓이다. 여자친구를 사귀어봐라. 교회 다니면 고칠 수 있다”고 훈계하는 시절이었다. “평생 ‘호모 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며 서럽게 울었”던 밤들이었다. 그는 10년이 지난 뒤에야, 게이들이 많이 가는 한 극장에서 만나 하룻밤을 보낸 형을 통해 자신이 ‘호모 새끼’가 아니라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고 동성애 인권운동을 공부하면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게이라는 사실이 단 한번도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김승환조차,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까지의 유대 관계마저 사라지고, 다시는 부모님을 못 뵙지 않을까 두려웠다”는 것이다. “만 번의 망설임 끝에” 겨우 고백한 그에게 부모는 크게 실망하고 격하게 반응했지만, 치열한 고민의 시간 뒤에 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가기를 기대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들은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사는 이성애자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성소수자들이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지 않게, 그런 가족에게는 손을 내밀거나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다”(김조광수)고, “‘너를 믿고 있기 때문에 고백하는 것’이라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김승환)려 달라는 게 이들의 부탁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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