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 사진이란 없다

등록 2015-10-22 21:06수정 2015-10-23 11:15

대영제국 시대 많은 교과서는 사진에 지도, 도해, 통계, 텍스트 등을 함께 붙이는 콜라주 기법 등을 동원해 제국의 지리를 보여줬다. 비시커의 <대영제국>(1909) 중 ‘남부 아프리카’.  그린비 출판사 제공
대영제국 시대 많은 교과서는 사진에 지도, 도해, 통계, 텍스트 등을 함께 붙이는 콜라주 기법 등을 동원해 제국의 지리를 보여줬다. 비시커의 <대영제국>(1909) 중 ‘남부 아프리카’.  그린비 출판사 제공
사진이 사실의 기록이라지만
찍는 행위부터 주관·의도 개입
 
대영제국 빅토리아 시대
식민지 사진들은 ‘기획’의 산물
야만과 원시 강조하고
위대한 제국군대 용맹도 과시
경관에 지도 붙여 정보제공
국가 차원 슬라이드 강연까지
 
원정과 정복 정당화에 기여
“제국주의 표현·구체화”
제국을 사진 찍다:
대영제국의 사진과 시각화

제임스 R. 라이언 지음, 이광수 옮김
그린비·2만3000원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은 모두 빠짐없이 그 속에 기록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빠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프랑스 사람 다게르가 최초의 근대적 사진처리 기법인 ‘다게레오타이프’를 완성·발표한 1839년 한 신문은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피사체의 어느 순간을 찰나의 빛으로 포착해내는 사진은 그때부터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라는 지위를 얻었다. 기록 방식이 파일로 확장되고 ‘뽀샵’이 일반화한 오늘날 그런 믿음은 예전 같지 않지만, 은도금 동판에서 필름에 이르던 사진의 전성기에 그 신뢰는 자못 공고했다.

‘뽀샵’이 없던 시대지만, 필요하면 사진의 위·변조도 감행됐다. 그린비 출판사 제공
‘뽀샵’이 없던 시대지만, 필요하면 사진의 위·변조도 감행됐다. 그린비 출판사 제공
‘뽀샵’이 없던 시대지만, 필요하면 사진의 위·변조도 감행됐다. 애초 어니스트 게지가 찍은 ‘키쿠유에서의 조약 체결’(1889)은 훗날 <여왕의 제국>에 수록되면서 ‘동아프리카에서의 조약 체결’로 제목이 바뀌고 초점도 추장에서 모자를 쓴 백인에게로 옮겨졌다.  그린비 출판사 제공
‘뽀샵’이 없던 시대지만, 필요하면 사진의 위·변조도 감행됐다. 애초 어니스트 게지가 찍은 ‘키쿠유에서의 조약 체결’(1889)은 훗날 <여왕의 제국>에 수록되면서 ‘동아프리카에서의 조약 체결’로 제목이 바뀌고 초점도 추장에서 모자를 쓴 백인에게로 옮겨졌다.  그린비 출판사 제공
그러나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순간의 특정 대상을 사각 프레임 안에 가두는 행위는 나머지 대상을 배제하는 것이기에, 이 취하고 버리는 일련의 선택에는 주관과 의도가 개입되게 마련이다. 이처럼 사진이 사실‘만’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닐 가능성은 처음부터 잠재해 있었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임스 라이언의 문제의식도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객관적이고 진실한 기록인가.’ <제국을 사진 찍다: 대영제국의 사진과 시각화>는 작은 섬나라 잉글랜드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몸집을 불려가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 사진에 부여되고 또 사진이 수행했던 역사적인 역할을 꼼꼼히 추적한다.

빅토리아가 제위에 오르기 7년 전인 1830년 창립한 영국의 왕립지리학회는 “제국을 사진으로 기록·제작·소비·보관하는 일”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는다. 사진 한장을 얻기 위해 8시간 노출을 감수해야 했던 ‘헬리오그라프’가 그 무렵 다게레오타이프로 대체되면서 노출 시간이 몇 분 안쪽으로 경이롭게 단축됐다. 이렇게 시동을 건 기술적 진보는 캘러타이프(1840)와 콜로디온 습판법(1851)을 거쳐 롤 필름에 코닥 카메라(1888)가 만들어지기까지 쉼없이 이어졌다. 제국의 곳곳을 누빌 ‘사진 탐사’의 기본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사진은 대영제국의 촉수가 뻗어 있는 모든 곳에서 만들어졌다. 가령 1867년부터 1년간 지속된 왕립공병대의 아비시니아 작전은 포로로 잡힌 유럽인 몇 명의 목숨과 아비시니아 황제 테오도르 2세의 자결을 맞바꾼 ‘작은 전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기록한 유례없는 사진들 덕분에 제국을 빛낸 기념비적인 전쟁으로 격상된다. 영국군은 처음부터 본국에서 사진 저장고와 설비를 가져오고, 사진 전담 책임자에 조수 7명을 붙여 작전의 전 과정을 담았다. “전제 군주를 몰아내기 위해 혹독한 지리적 조건을 극복한 위대한 제국 군대의 관점으로 바라본 작전의 공식 기록”인 이 사진들은 <아비시니아 작전기>의 기초 자료로 쓰였다.

영국군은 그 뒤로도 니제르 원정, 크리미아 전쟁 등 크고 작은 해외 작전에서 파노라마사진을 포함해 다양한 ‘경관’들을 생산해냈는데, 거기엔 예외 없이 해당 지역의 전략적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가 따라붙었다. 사진은 작전 개시를 앞둔 군대에 정찰 자료로도 제공됐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은 단순히 기록의 일부나 작전에 대한 멋진 증거”만이 아닌 “지리과학적 담론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찍는 그 순간부터 ‘선택된’ 사진은 기록이나 정보를 넘어 제국 군대의 위용을 보여주고, 원정과 정복 전쟁으로 가시화한 식민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군대만 나선 것은 아니다. 왕립지리학회의 후원을 받아 아프리카로 떠난 탐사대의 사진은 “땅 전체에 천박하고 술 취한 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야만의 모습을 보여줬다.”(1860년 왕립지리학회 얼 그레이 회장의 기록) 그곳은 암흑의 대륙이었고, 당연히 제국의 ‘빛’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새뮤얼 본이 찍은 인도의 풍경은 ‘과학적 탐험’ 욕구를 부추겼고, 중국과 키프로스 등을 두루 섭렵한 존 톰슨의 피사체들은 쓸어버리거나 뜯어고치거나 청결하게 만들어야 할 ‘대상’으로 비쳤다.

그곳 원주민들은 ‘어느 사모아 미인’의 경우처럼 이국적인 여성의 몸과 그 배경을 이루는 비서구적 풍경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되거나 인종의 견본으로 골상학 또는 우생학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사진 속 낮은 문명은 높은 문명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식민 실현의 섭리론을 암시하고 있었다.

당시의 사진기는 휴대 가능한 크기가 웬만한 성인 남자의 상체보다 컸다. 아서 래드클리프 더그모어, ‘저자와 그의 카메라’ <야생 아프리카에서 카메라와 함께하는 모험>(1910).  그린비 출판사 제공
당시의 사진기는 휴대 가능한 크기가 웬만한 성인 남자의 상체보다 컸다. 아서 래드클리프 더그모어, ‘저자와 그의 카메라’ <야생 아프리카에서 카메라와 함께하는 모험>(1910).  그린비 출판사 제공
사진은 상업적인 사진첩으로, 책자로 유통됐다. <더 넓어진 영국>(1895),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1896), <여왕의 제국>(1897) 등은 “제국에 대한 적합한 지식을 주입하는 하나의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 등에선 왕립지리학회에서 ‘지구적 규모’로 축적한 방대한 양의 슬라이드가 “국가와 제국의 행위 안에서 수집·통합된 지식의 판타지”로 청중에게 보여졌다.

특히 1902년에 설립된, 매우 노골적인 이름을 가진 식민성시각교육위원회는 제국 전역에 걸쳐 슬라이드 강연을 실행에 옮겼다. 대개 각 식민지에서 출발해 영국 본토의 명소와 경치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강연은 1906년의 경우 1만8천명 이상이 들었다. 강연에선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식민 각국에 우뚝 선 빅토리아의 동상을 보여줬다. 위원회는 아예 “‘원주민’의 특징과 영국의 지배가 가져다준 탁월한 은혜를 기록해 달라”고 작가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요컨대 ‘시각화된 제국’ 혹은 ‘제국의 시각화’라고 할 이런 시도들은 결국 사진에 투사된 지리학적 판타지를 통해 “멀리 떨어진 식민지를 길들이고 재구성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진들은 객관적인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구체화”한 결과물이기도 했다.

군데군데 실려 있는 80여장의 희끄무레한 흑백사진이 설득력을 더한다. 물론 그 사진들 또한 저자가 의도를 갖고 고른 것이겠지만.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로제 ‘아파트’ 빌보드 핫100 3위 1.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로제 ‘아파트’ 빌보드 핫100 3위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2.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긴 연휴, 함께 읽고 싶은 ‘위로의 책’ 3.

긴 연휴, 함께 읽고 싶은 ‘위로의 책’

‘개미박사’ 최재천 교수 “여왕개미가 새 시대 리더의 표상” 4.

‘개미박사’ 최재천 교수 “여왕개미가 새 시대 리더의 표상”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5.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