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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등록 2015-10-29 21:08수정 2015-10-30 10:02

1963년 12월14일 그의 처형을 알린 신문 기사에 실린 황태성. 푸른역사 제공
1963년 12월14일 그의 처형을 알린 신문 기사에 실린 황태성. 푸른역사 제공
상주 출신 항일독립운동 사회주의자
남북협상 밀명 띠고 5·16쿠데타뒤 월남
박정희·김종필은 왜 그를 외면했을까
황태성사건 다룬 첫 본격 단행본이자
종합적으로 살핀 거의 유일한 보고서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

김학민·이창훈 지음/푸른역사·2만원

황태성(1906~1963). 경북 상주의 부농 집안 출신으로 경성제일고보(경기고)와 연희전문을 다닌 그는 일본인 교사 배척 동맹휴교, 광주학생운동 서울지역 전파 등에 앞장서다 제적·투옥당한다. 1935~40년에는 항일조직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사건으로 대구형무소에 갇혔다. 신간회 김천지부 대표였으며, 조선공산당 경북도당 조직부장이었고, 광복 당시 여운형 등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인민공화국 전국인민위원회 후보위원, 경북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1905~1946), 건준 김천군 인민위원장 임종업과 함께 ‘경북지역 사회주의 3인방’으로 일컬어졌던 그는 대구 ‘인민항쟁’(10·1폭동)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돼, 1946년 11월 북으로 피신했다. 북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산업성 지방산업관리국장, 무역성 서리 겸 부상(차관급)을 지냈다. 1955년 현직에서 물러난 뒤 1961년 8월 김일성의 남북협상 밀명을 받고 남파됐다. 그 직전의 5·16 쿠데타 주역 박정희·김종필을 만나 협상하려다 실패하고, 1963년 12월 57살 나이에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1963년 12월14일 ‘간첩 황태성 총살형 집행’ 제목의  신문 보도.
1963년 12월14일 ‘간첩 황태성 총살형 집행’ 제목의 신문 보도.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는 분단 이후 최대의 거물급 ‘간첩’ 사건이라는 ‘황태성 사건’의 진상 규명과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전체 삶 복원을 시도한다. 황태성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황태성,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5·16쿠데타 주역들을 고민에 빠뜨렸고, 미국을 긴장시켰으며, 1963년 대선 때 박정희 후보 좌익전력을 공격했던 윤보선 후보의 핵심 유세전략의 하나로 활용돼 박정희의 재집권 자체를 위기에 빠뜨렸던 황태성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박정희 장군, 나를…>의 황태성(이하 경칭생략) 일생 복원작업은 제한된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병행한 그 주변 인물들과 당시 사회 상황 재구성 작업의 풍성한 성과 덕에 볼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 이후 이 땅의 지식인들이 어떤 처지로 몰리고 도태돼 갔던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황태성의 조카사위 권상능과 아내 임미정, 지금 미국에 거주하는 손녀 황유경(66) 등과의 본격 인터뷰를 통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황태성과 사건 주변 사실들을 새롭게 채록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역시 공개된 적 없던 사건 판결문들을 제시하면서 당시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공저자 김학민은 “판결문을 통해 사실관계들을 거꾸로 짚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작업들을 거쳐, 저자들은 묻는다. 황태성은 그의 주장대로 북의 ‘밀사’였나, 아니면 처형자들이 단정한 대로 ‘간첩’이었나? 책은 적어도 그가 간첩은 아니었다고 본다. 공소장이나 판결문 어디를 보더라도 그가 실제 간첩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남파된 뒤 스스로 자신의 신분과 거처를 알렸고, 당국도 처음에는 그를 밀사 대접 한 정황이 여러 자료와 증언들을 통해 포착된다.

대구 10월항쟁 때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 푸른역사 제공
대구 10월항쟁 때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 푸른역사 제공
하지만 황태성이 간첩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그의 성장 과정과 항일운동, 사회주의자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 북으로 가게 된 사연, 혈연들이 찢어지고 다수가 죽음을 맞게 된 과정, 박상희·박정희 집안과의 기구한 인연, 재판 과정과 권상능·임미정 부부와 며느리 이상열, 손녀 황유경의 옥바라지와 관련한 증언 등 이 책의 대종을 이루는 내용들은 그런 물음에 대한 명료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앙정보부 신문자료와 미국 정보기관 신문자료 등 그 문제 규명에 결정적 실마리가 될 핵심자료들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책 내용 자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당시 세상과 사건의 진상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고 지금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더욱 명료하게 유추해 낼 수 있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쓰는 데 큰 밑그림으로 삼았다는 인터뷰의 주인공 권상능의 부인 임미정은 ‘경북 사회주의 3인방’ 중 한 사람인 임종업의 딸이다. 임종업의 아내이자 임미정의 어머니 황경임은 황태성의 여동생이다. 또 한 사람의 주요 인터뷰 대상자 황유경은 황태성의 장남 황경옥·이상열의 외동딸이다. 국민보도연맹 김천군연맹 간사장에 억지로 임명됐던 임종업은 한국전쟁 초기 집단학살의 희생자가 됐다. 황태성과 둘째 아들 황기옥, 그리고 여동생 황경임은 북으로 갔고, 장남 황경옥은 1949년 대구 시국사건 관련자로 처형당했다.

1928년 신간회 일로 한달간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의 황태성. 푸른역사 제공
1928년 신간회 일로 한달간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의 황태성. 푸른역사 제공
남파된 뒤 임미정·김민하(황태성과 같은 상주군 청리면 출신으로, 황태성의 대구 체류 시절 누이동생과 함께 황의 집에서 자취를 했다. 권상능의 누이와 결혼했고 나중에 중앙대 총장이 된다)에 의지하던 황태성이 만나려 했던 조귀분은 박정희의 셋째 형 박상희의 아내였다. 그들 사이에 난 박영옥이 김종필과 결혼한다. 박상희에게 조귀분을 소개한 이가 황태성이다. 조귀분은 황경임과 함께 항일여성운동단체 근우회 일을 하면서 그 부회장과 김천지회장을 지냈다. 조귀분은 박정희·김종필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던 황태성의 존재를 중앙정보부에 알렸고, 황은 검거된다. 1946년 대구 10월항쟁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박상희는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다. 박상희의 둘도 없는 동지 황태성은 11살 아래인 박정희의 멘토였다.

시골 소학교 교사를 하다 일제 괴뢰국 만주국군 중위로, 일본 패전 뒤 미군 함정을 타고 귀국한 뒤 국군 장교가 되고 다시 군내 남로당원으로 활약하다, 여순반란사건 뒤 사형당할 위기에서 만주군과 일본 육사 인맥 덕에 군내 남로당 조직 정보를 넘겨주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박정희. 남로당원이 된 것은 그가 조선경비대 시절 제2중대장을 맡았던 춘천 제8연대 연대장을 비롯한 장교들 다수가 남로당원이었던데다, 당시는 남로당이 대세로 비친 시대상황, 박정희의 기회주의적 출세지향 성향이 조합된 결과라고 책은 분석했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다시 국군 장교로 복귀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대통령이 돼 영구집권을 꾀했던 그는 북의 밀사라며 찾아온 형의 절친이자 젊은 시절 멘토 황태성을 끝내 외면했다. 그의 과거 사상적 이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미국, 쿠데타 뒤의 군부 내 권력투쟁, 그를 ‘빨갱이’로 몬 야당의 정치공세에 쫓기던 그에겐 출구가 필요했다. 황태성의 처형으로 그는 위기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 역시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어쩌면 식민지 시절 사회주의사상에서 민족 및 계급해방의 길을 찾았던 피억압 민족 지식인들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황태성·박상희·임종업 3인 또는 세 집안의 얽히고설킨 파란만장의 ‘근대 헤쳐나가기’로도 읽을 수 있는 이 책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이며 패자는 누구일까?

황태성 처형을 통해 남의 쿠데타세력의 본질을 명확하게 확인한 북에선 대남정책 온건파들이 몰락하고 강경파들이 득세한다. 이후 대결적 자세를 더욱 굳힌 남북은 모두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 그들의 고뇌와 울분과 변절, 자각, 목숨까지 바쳤던 이상은 끝없는 이념과 정략 대결의 재료로 소진되고 흩어졌다. 책은 그 실패를 되돌아보며 거기서 어떤 교훈을 끌어낼지 묻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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