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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누가 좀 나의 이 불안을 달래주오

등록 2015-11-12 20:24수정 2015-11-13 10:02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IMF 시대의 책읽기 풍경
아이엠에프(IMF)는 책읽기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손님만 북적, 책만 보고 가지요’(<경향신문> 1998년 1월23일치)라는 기사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직후의 서점 풍경을 다음처럼 전한다. 평상시에 비해 찾아오는 사람은 30% 이상 늘었지만 서점의 매출액은 급감했다. 대학생들은 인문사회과학 코너에서 책을 베끼고, 학습참고서 코너에서는 중학생들이 연습장에 수학문제를 푼 뒤 답을 맞춘다. 늘어난 여가에 비례해 급증하던 여행, 레저 분야 책들이 자취를 감추고 외국어 교재와 값싼 문고본조차 고전하는 상황에서 아이엠에프 관련 경제·경영서만 20여종 출판되어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아이엠에프 시대는 서점과 출판가에도 환란이었다.

‘산에는 꽃이 피네’ ‘무소유’ 등
지친 마음 위로하는 이야기 읽혀

로열티 내는 외국작품 출간 급감
국내작품 대거 베스트셀러 진입도

뜻하지 않게 아이엠에프 덕을 본 경우도 있다. 1998년 4월의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집계 종합순위를 보면, 20위권 안에 한국 소설이 절반 이상 진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소설이 외국 소설과 다른 장르를 제치고 이렇게 대거 베스트셀러로 진입한 것은 90년대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외국 작가의 책 출간이 급감하고, 출판사들도 국내 작가 작품 출간에 기획과 홍보의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은희경 외 <아내의 상자>, 김진명의 <하늘이여 땅이여>, 김주영의 <홍어>, 양귀자의 <모순> 등이 98년도에 많이 읽힌 한국 소설들이다.

법정 스님
법정 스님
류시화
류시화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불안을 위로해줄 ‘따뜻한 이야기’,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읽힌 것이다. 법정 스님의 에세이 <산에는 꽃이 피네>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무소유>도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97~98년은 특히 류시화의 해이기도 했다. 그가 기획한 법정 스님의 에세이와 잭 캔필드 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비롯하여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이 연달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감성은 아이엠에프의 황폐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영혼을 위한 수프였던 셈이다.

정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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