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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상 가장 잘살지만 가장 섬뜩한 사회

등록 2015-11-19 20:55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반비·1만7000원

 

누군가가 누군가를 규정한다. 행복하기만 할까. 그것이 꽃이라면 다행이다. 똥이나 독이라면? 우리는 수시로 그런 자리매김 앞에 전전긍긍한다.

그것이 전부일까. 관계망에서 그려지는 ‘나’ 말고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에서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대부분 환경에 달려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더불어 우리도 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환경은 녹록지 않다. 정신분석학자인 지은이 파울 페르하에허는 ‘엔론사회’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낳은 여러 환경을 보여준다. 미국 대기업 엔론은 최고의 생산성을 올린 직원에게 보너스를 몰아주고 생산성이 제일 낮은 직원은 해고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회사는 공포 분위기가 만연했고, 거의 모든 직원이 수치를 조작했다. 그리고 파산했다. 조직이 구성원을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그 구성원이 다시 조직을 의도치 않게 붕괴시킨 것이다.

엔론은 파산했지만, 엔론사회는 건재하다. 엔론을 파국으로 몰고간 수량화와 성과주의는 효율과 경쟁을 위한 도구로 도처에서 쓰임새를 더하고 있다. 기업은 여전히 성과만을 강조하며, 개인들은 극한의 경쟁에 숨이 막힌다. 기업 밖도 상황이 악화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은 지식공장이, 병원은 건강기업이 됐다. 결국 좋은 삶과 거리가 먼 현재로 퇴보한 것이다.

책의 부제는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이다.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 나쁜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개인은 괴물로 변해간다. 이미 미국은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정신병 환자보다 감옥에 수감된 정신병 환자의 수가 세 배를 넘어섰다. 1840년대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라 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문제는 과거보다 더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양상도 전혀 다르다.

우리는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 자신을 바라만 봐야 할까. 책에서는 이 사회의 규범과 가치의 골간이 자신의 신체 및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 몸과 몸, 그 안의 윤리와 규율을 언급하며 거기에서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에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았다. 예를 들면, 지배자의 권력과 일하는 사람의 권한을 구분하고, 효율성과 행복을 모두 고려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효율과 성과만을 위한 양적 평가가 질적인 평가 시스템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점도 덧붙인다.

지은이는 이렇게 개인과 사회가 동시다발로 변화해야만 심리적 장애를 대량생산하는 사회에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동일성과 차이, 집단과 개인, 지시된 동일성과 자유로운 선택의 균형을 회복시킬 정치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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