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Ⅰ·Ⅱ·Ⅲ (전 6권)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각 권 9000~2만5000원
저자 자신이 “부르주아지의 머리 위에 던져진 가장 두려운 돌멩이”라고 호언했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고 김수행 교수가 고쳐 번역한 2015년판 <자본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기 상·하로 나뉜 1·3권에 2권, 참고문헌과 인명해설 등을 따로 모아놓은 부록까지 모두 6권으로, 전체 분량은 4천쪽이 넘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제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 제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다루고 있다. 1990년 초판을 낸 뒤 1991년, 2001년, 2004년에 있은 부분 개역과 달리 이번 판은 전면적인 개역본이면서 지난 7월 타계한 ‘역자 김수행’의 마지막 번역본인 셈이다.
2015년 개역판을 내게 된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자본론>을 지금 막다른 골목에 떠밀리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긴박한 필요성 때문에 너무 오래된 옛날 번역을 버리고 다시 번역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한글학자 이오덕 선생의 책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고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는 표현을 모두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었다고 한다. 저본으로는 최신 영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선집>과 신일본출판사판 <자본론> 등이 주로 쓰였다.
김 교수는 이 번역을 필생의 업으로 자임했던 듯하다. ‘제2차 개역에 부쳐서’라는 2001년 글에서 그는 “<자본론>을 번역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인 것은, 마르크스는 천지를 진동시킬 이론을 발견하는 데 일생을 보냈는데, 나는 그의 책을 번역하고 해설하는 데 일생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최초 번역에서 마지막 개역판을 내기까지 25년 세월이 걸렸으니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저자인 마르크스의 이력에서도 <자본>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1845)에서 “문제의 핵심은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라고 장담했던 그는 프랑스 2월혁명을 비롯한 1848년의 유럽 정세에서 기대한 혁명 대신 쓰라린 좌절을 맛본다. 정치적 봉기보다 성숙해 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토대에서 새로운 혁명의 씨앗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그가 옮겨간 곳은 당시 자본주의의 심장부이던 런던이었다. 1850년부터 영국박물관 부속 도서실과 집을 오가며 경제학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그는 1867년 마흔아홉 나이에 독일어로 된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초판을 펴냈다. 마르크스는 탈고의 변에서 “이 책은 내가 건강, 행복, 가정을 모두 희생하고서 얻은 것”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부제가 ‘정치경제학 비판’인 것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경제학의 당시 이름이 정치경제학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 정치경제학, 즉 고전파를 위시한 부르주아 경제학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동시에 그 학문이 대변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경제도 해부대에 올린다. 제1권 제1장 상품에서 시작해 제3권 제52장 계급으로 끝나는 구성은 이 책의 목적을 함축해 보여준다.
<자본>은 미완성 유작이 될 뻔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2권을 위한 8개의 초고와 제3권을 위한 4개의 초고만을 남긴 채 1883년 세상을 떴다. 이 ‘원재료’를 다듬고 살찌우고 짜맞춰 1894년에 완간한 사람은 그의 평생지기 프리드리히 엥겔스였다. <자본> 2·3권에 그의 이름이 마르크스와 나란히 적히게 된 연유다.
개역이란 말에 걸맞게 내용은 완전히 뜯어고쳤다지만, 책 이름에 ‘론’은 여전히 살아 남았다. 원저작의 이름이
이니 그냥 <자본>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고, 걸핏하면 ‘론’자를 가져다 붙이는 일본식 작명 풍습은 이제 ‘수입선’이 바뀌었으니 청산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역자와 출판사는 이번에도 옛 이름을 고수했다.
20일 저녁엔 개역판 출판 기념회가 예정돼 있다. 고 김수행 선생 추모위원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서울 명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치러질 이 행사에선 <자본>의 또다른 번역자인 강신준 동아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21세기 한국에서 <자본론> 읽기’ 세미나도 열린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