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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이 들면 다 같은 노인? 불평등, 늙을수록 커진다

등록 2015-12-10 20:04수정 2015-12-11 09:50

인생 종반전은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다. 출전 선수의 성별,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집안이 가진 경제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노년층 불평등 확대재생산은 이제 사회 전체 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 사진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에서 펼쳐진 기초연금에서 배제된 빈곤노인에 대한 퍼포먼스. 김성광 flysg2@hani.co.kr
인생 종반전은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다. 출전 선수의 성별,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집안이 가진 경제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노년층 불평등 확대재생산은 이제 사회 전체 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 사진은 지난 7월 서울 종로구에서 펼쳐진 기초연금에서 배제된 빈곤노인에 대한 퍼포먼스. 김성광 flysg2@hani.co.kr
전례 없는 고령화 ‘사회문제’
늙으면 평등해진다는 관념에
에이브럼슨 “사실 아냐” 반박

“노인은 완전히 다른 동물”
누구나 맞는 인생의 종반전
인종·성별 따라 ‘불공정 게임’

노년 대상 현장 연구 2년 반
빈곤 계층 확대재생산 분석
자신의 미래임을 인식해야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에코리브르·1만8000원

1900년에 출생한 미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47살이었지만, 2011년에 태어난 사람의 기대수명은 79살에 가깝다고 한다. 지금 미국인은 1세기 전보다 평균 30년 이상 더 오래 살고, 그만큼 전체 인구구성에서 차지하는 고령자 비중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주요국들 평균수명이 조만간 100살을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 지 이미 오래됐다.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져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미국보다 더 극적이어서, 2014년에 태어난 아이의 평균 기대수명은 82.4살(남자 79.0, 여자 85.5)이라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학위를 받고 애리조나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사회학자 코리 M. 에이브럼슨의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는 바로 이 전례 없는 ‘고령자 폭발’ 현상에 주목하면서, 변함없는 노년층 불평등 확대재생산 메커니즘을 통해 미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들여다 본 책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층의 삶은 더 평등해질까 여전히 불평등할까? 고령자들은 그 나이대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유지함으로써 이미 선택과정을 거친 데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각종 복지서비스 제공, 인구학적 평준화 등으로 젊었을 때보다 인종적·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돼 평등해진다는 명제가 있다. 에이브럼슨은 실증적 현장조사를 토대로 “이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고 얘기한다. 이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 이 책의 제1 주제다.

“왜 우리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죠?” 다른 일급 사회학자조차 이런 불평을 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지은이는 이 질적으로 다른 세계의 출현에 대한 학자들의 근시안적이고 구태의연한 사고를 나무란 뒤, 자신이 이 책에서 시도한 작업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노년은 불평등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검토하는 데 중요한 현장이다. 노인 인구가 전례 없이 늘어난 인구변화 자체가 주목할 만한 일인데다, 그런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이런 유형의 비교민족지학적 검토는 거의 없었다. 노년은 우리에게 사회 전체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노년은 우리가 지켜보기 힘들더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종반전을 형성하는 과제와 불평등을 무시하기보다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덜 우울할 것이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대처도 가능할 것이다.’

이대로는 너무 우울하다는 지은이의 얘기는 개인 차원의 감상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노년의 우울은 그 노년층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누구든 머지않아 노년층이 될 수밖에 없는 인구 전체의 우울을 의미한다. 고령화사회에 직면한 인류에게 이 우울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는 최우선적 과제의 하나일 수 있다.

노년 인구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들 삶의 기본 도구이자 자원이라할 몸, 신체가 늙어간다는 것, 의지와 상관 없이 지속적으로 망가져 간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면담 조사한 이들의 말을 빌려 “노인은 완전히 다른 동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늙을 때까지는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고 면담자들은 얘기한다. 아마도 인간의 한계는 바로 이 점, 즉 자신이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그런 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불과 얼마 뒤 자신에게 찾아올 노화를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을지 모른다.

미국 4개 지역에서 계층, 인종(민족), 성별 등을 고려해 60명(평균연령 69.4살)을 선정하고 1주일에 20~40시간씩 2년 6개월간 지속적으로 만나서 일상생활을 살피며 면담한 비교민족지학적 현장조사 결과를 분석한 이 책은, 면담자들의 육성을 통해 그들의 구체적 일상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신체적 변화로서의 노화의 의미를 먼저 실감나게 부각시킨다.

이 “완전히 다른 동물”로의 전화는 모든 노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필연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 과정과 양상은 공통적이지 않다. 노화가 모두에게 곤경을 안겨준다는 점에선 같지만, 그 곤경에 이르는 과정과 정도는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불평등하다. 그리고 그 불평등은 시간이 갈수록 해소되는 게 아니라 계속 유지되며 더욱 확대되기도 한다. 이를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책을 쓰게 만든 문제의식이다.

지은이는 노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인생의 종반전(end game)으로 보고 이를 게임에 비유한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도 출전선수, 조직 메커니즘, 경기시간의 구분, 그리고 난제를 처리하는 갖가지 방법과 전략을 내포하기 때문에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은 분석적으로 유용하다.” 게임은 일반적으로 공정하다는 환상을 안겨준다. 실제로는 공정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런데 인생의 종반전은 아예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출전선수가 남자냐 여자냐, 부자냐 가난뱅이냐, 흑인이냐 백인이냐 아니면 아시아계냐 라틴계냐,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회적·구조적 토대의 차이만이 아니라 개인의 자원에서도 출발부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런 차이(불평등)에 개인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 그 대처 동기와 성향, 자원, 전략 등에 따라 불평등의 양상과 정도는 또 달라진다. 각자가 보유한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과 같은 것인데, 그것은 이전 단계부터 불평등했고 노년 단계에서도 그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으며, 결국 계층(계급)의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사회보장 제도와 메디케어(미국 공공의료보장제도) 약속만으로 불평등이 종식되지는 않으며, 노년은 인종(민족), 사회경제적 지위, 성별 같은 불평등과 함께 존재하는 (그리고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범주적 불평등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년은 불평등이 축적된 결과이자 그 자체가 불평등의 구성요소로서 미국사회 전체의 불평등 구조의 한 축이 되어 있다.

“사회 계층화의 핵심 메커니즘―건강 불균형, 구조적 불평등, 문화, 관계망 등―이 어떻게 노년의 일상생활을 구조화하는지, 또는 역으로 노년에만 해당하는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이 어떻게 미국 불평등의 중심축을 이루는지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쓴 목적이다. 노년의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각도로 본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그것을 치밀한 장기 현장조사를 통해 확인한 당사자들 체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면 대책은? 문제를 짚는 과정에 이미 그 시사점들이 드러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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