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불능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김영사·2만5000원 ‘사람들이 만드는 물건은 점점 생명체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생명체에는 공학 요소가 점점 더 많이 담긴다.’ 복잡성의 과학을 전하는 1994년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했던 말이지만, 2015년 오늘 우리는 이런 예측을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술은 환경에 반응하며 진화하고, 유전자는 더욱 손쉽게 다뤄지고 변형된다. 기술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새 물결을 일으킨 미국 잡지 <와이어드>의 창업자인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은 당시엔 기술문화 신조류에 주목하며 미래를 예측한 책으로 읽혔으나, 지금 독자들에겐 우리가 사는 기술 세계의 한 단면을 통찰하게 하는 책으로 읽힐 만하다. 저자는 언론인다운 필체로 당대에 떠오르는 복잡성 과학을 여러 분야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세히 전한다. 생태계처럼 스스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식물처럼 자라는 컴퓨터 그래픽스, 복잡한 연결망을 이룬 뇌, 중앙집중의 하향식이 아니라 단순 구성요소의 집합에 의해 전체가 만들어지는 상향식 제어 로봇, 집단지능을 보여주는 벌떼와 개미의 행동…. 이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경제, 제도에서도 생물처럼 반응하고 적응하며 진화하는 그런 기술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생물, 생태계, 제도, 기술에서 나타나는 이런 ‘생물 논리’의 세계를 통틀어 ‘비비시스템’(vivisystem)이라 명명했다. 이는 곧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융합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려 900쪽 넘게 두툼한 책은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부분이 모일 때 거기에선 개별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특성의 ‘창발’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윈 진화론은 진화의 원동력으로 자연선택을 강조했지만, 저자 켈리는 그뿐 아니라 자기조직화와 창발 같은 특성이 함께 고려돼야 진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기술문화의 새 흐름을 보여주면서 또한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의 전략을 함께 가르쳐주려는 듯하다. 저자는 기계, 제도, 생명이 더욱 결합하는 ‘신생물학적 문명’의 시대에,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신이 되는 아홉 가지 법칙”을 말미에 제시한다. 저자의 의욕이 다소 앞선 ‘법칙’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것은 중앙집중보다 분산 시스템을 택할 것, 아래에서 위로 나아가는 상향식 제어를 사용할 것, 지속적으로 불균형을 추구할 것, 변화 자체를 변화시킬 것과 같은 태도로 요약된다. 책 제목인 ‘통제불능’은 무질서와 혼돈을 속수무책으로 놔둘 수밖에 없음이 아니라 자연과 문화의 이치가 본래 통제불능에서 비롯하며 좋은 조건과 만나 멋진 진화를 이룰 수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그게 저자가 강조하는 복잡성 과학의 으뜸 이치일 것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김영사·2만5000원 ‘사람들이 만드는 물건은 점점 생명체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생명체에는 공학 요소가 점점 더 많이 담긴다.’ 복잡성의 과학을 전하는 1994년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했던 말이지만, 2015년 오늘 우리는 이런 예측을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과 스마트 기술은 환경에 반응하며 진화하고, 유전자는 더욱 손쉽게 다뤄지고 변형된다. 기술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새 물결을 일으킨 미국 잡지 <와이어드>의 창업자인 케빈 켈리의 <통제불능>은 당시엔 기술문화 신조류에 주목하며 미래를 예측한 책으로 읽혔으나, 지금 독자들에겐 우리가 사는 기술 세계의 한 단면을 통찰하게 하는 책으로 읽힐 만하다. 저자는 언론인다운 필체로 당대에 떠오르는 복잡성 과학을 여러 분야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세히 전한다. 생태계처럼 스스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식물처럼 자라는 컴퓨터 그래픽스, 복잡한 연결망을 이룬 뇌, 중앙집중의 하향식이 아니라 단순 구성요소의 집합에 의해 전체가 만들어지는 상향식 제어 로봇, 집단지능을 보여주는 벌떼와 개미의 행동…. 이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경제, 제도에서도 생물처럼 반응하고 적응하며 진화하는 그런 기술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생물, 생태계, 제도, 기술에서 나타나는 이런 ‘생물 논리’의 세계를 통틀어 ‘비비시스템’(vivisystem)이라 명명했다. 이는 곧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융합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무려 900쪽 넘게 두툼한 책은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부분이 모일 때 거기에선 개별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특성의 ‘창발’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윈 진화론은 진화의 원동력으로 자연선택을 강조했지만, 저자 켈리는 그뿐 아니라 자기조직화와 창발 같은 특성이 함께 고려돼야 진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기술문화의 새 흐름을 보여주면서 또한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의 전략을 함께 가르쳐주려는 듯하다. 저자는 기계, 제도, 생명이 더욱 결합하는 ‘신생물학적 문명’의 시대에,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신이 되는 아홉 가지 법칙”을 말미에 제시한다. 저자의 의욕이 다소 앞선 ‘법칙’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것은 중앙집중보다 분산 시스템을 택할 것, 아래에서 위로 나아가는 상향식 제어를 사용할 것, 지속적으로 불균형을 추구할 것, 변화 자체를 변화시킬 것과 같은 태도로 요약된다. 책 제목인 ‘통제불능’은 무질서와 혼돈을 속수무책으로 놔둘 수밖에 없음이 아니라 자연과 문화의 이치가 본래 통제불능에서 비롯하며 좋은 조건과 만나 멋진 진화를 이룰 수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그게 저자가 강조하는 복잡성 과학의 으뜸 이치일 것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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