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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돈 돈 돈으로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 유럽축구

등록 2016-02-11 20:34수정 2016-02-12 10:29

경기력·성적-구단 재정 ‘정비례’
축구 산업과 돈의 상관관계 해부
 
소수클럽 지배, 다수 클럽은 빈곤
억만장자 구단주 신흥명문 만들기도
 
‘소수 지배’ 원인은 ‘승강제’라지만
축구 인기나 의외성도 경쟁서 비롯
축구 자본주의
스테판 지만스키 지음, 이창섭 옮김
처음북스·1만6000원

2009년 9월20일, 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6라운드.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맞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후반 추가시간 95분28초에 터진 마이클 오언의 ‘극장골’로 4-3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경기를 마친 맨유의 앨릭스 퍼거슨 감독이 <비비시>(BBC)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 경기를 통해 우리의 진정한 힘을 보여줬다. 시끄러운 이웃에게 우리의 진가를 보여줘 기쁘다.”

맨시티는 1년 전인 2008년 9월 아부다비의 거부 셰이크 만수르에게 팔렸다. 그 전까지 맨시티는 맨유의 적수라고 하기엔 이력이 초라했다. 맨유가 92-93시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차례 우승을 하는 동안 맨시티는 리그 하위권이나 2부, 3부 리그를 전전하고 있었다. 맨유가 영국 구단 사상 최초로 ‘트레블’(한 시즌 자국 리그·FA컵·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98-99시즌, 맨시티는 3부 리그를 가까스로 벗어났던 팀이다. 퍼거슨의 말은 ‘근본 없는 졸부구단’을 향한 야유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더비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만수르라는 억만장자 ‘슈가 대디’의 자금력은 그저 그런 구단을 신흥 강호로 부상시켰다. 마침내 11-12시즌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44년 만의 1부 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초 우승이었다. 13-14시즌에도 리그를 제패했다. ‘시끄러운 이웃’이 ‘무시할 수 없는 이웃’이 된 것이다. 첼시도 2003년 러시아의 석유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뒤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두 사람이 각기 구단에 투자한 자금은 28억달러가 넘는다.

‘그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전작 <사커노믹스>를 통해 축구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스테판 지만스키는 <축구 자본주의>에서 축구산업과 돈의 상관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친다. 경제학자답게 그가 동원하는 것은 각종 회계·통계 자료들이다.

유럽이 중심인 프로축구 산업은 ‘선발자이익’을 틀어쥔 소수 클럽들이 지배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바르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자국 1부 리그를 거의 ‘독식’해왔다. 레알은 32번, 바르셀로나는 14번, 뮌헨은 23번, 맨유는 13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해마다 열리는 ‘별들의 잔치’ 챔피언스리그(챔스리그)에서도 이들 클럽은 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이들 소수 클럽이 시장을 지배하게 된 비결은 “선점을 했거나, 입지가 좋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관련됐거나, 특정한 개인 또는 단체가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디 스테파노라는 걸출한 선수와 독재자 프랑코의 지원을 빼고는 레알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감독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한 맷 버즈비와 전설적인 앨릭스 퍼거슨이 없었다면 지금의 맨유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공적인 역사를 쓰며 몸집을 불린 이들 클럽은 값비싼 선수들을 마음대로 골라 산다. 성적은 따라온다.

가령 잉글랜드 리그의 경우, “선수 연봉 총액과 리그 순위는 비례한다”. 40년 전부터 그랬지만, 프리미어리그 들어서는 양상이 더 분명해졌다. 리그에서 우승한 팀은 평균 4배, 2위를 한 팀은 평균 2.5배의 돈을 쓴다. 무엇보다 선수 연봉이 ‘엄청나게’ 올랐다. 1960년 리그 연봉 상한선은 주당 32달러로, 비숙련 육체노동자의 임금과 비슷했다. 반면 웨인 루니의 현재 연봉은 1500만파운드(약 270억원), 1주일에 4억5천만원을 받는다. 선수의 자유 이적을 권리로 인정한 ‘보스만 판결’(1995년) 이후 선수들은 명예 대신 돈을 좇는다. 게다가 재능 있는 선수는 한정돼 있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92-93시즌 구단들은 수입의 절반 정도를 선수 연봉으로 지출했지만, 12-13시즌 그 비율은 70%까지 올라갔다. 이건 평균이다. 상위권 팀일수록 더 많은 돈을 쓴다. 하위권 팀은 수입의 대부분을 잃게 될 강등을 면하기 위해 한계상황을 넘나드는 ‘출혈’을 감수한다.

클럽들은 유니폼 등 상품과 경기장 입장권 판매 등으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지만, 가장 큰 자금원은 텔레비전 중계권 수익이다. “유럽 축구의 성장은 다 중계방송 덕분이다.” 중계권료는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 총 수입의 절반을 차지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선 국내 중계권료 수입의 50%를 각 구단이 균등 분할하고, 25%는 리그 순위에 따라, 25%는 중계 횟수에 따라 나눈다. 상위권 팀일수록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각국 리그는 챔스리그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챔스리그 중계권과 상금은 각국 리그를 지배하는 10개 구단이 거의 싹쓸이를 해간다.

그럼에도 맨유처럼 막대한 수익을 내는 구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각 리그 상위권 구단일수록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익을 내기는 더 힘들다. 가령 11-12시즌 맨시티의 수입은 3억7천만달러에 그쳤다. 만수르가 만족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구단을 소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있다. “똑똑한 사업가도 축구 구단만 인수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만수르나 아브라모비치가 유난히 우승컵에 집착하는 것은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우승컵은 일종의 ‘지위재’인 셈이다.

축구 시장은 ‘소수 과점’을 특징으로 하지만, 거기 끼지 못해도 클럽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리미어리그 자료를 보면, 영업손실은 물론 순손실까지 입은 구단이 절반을 넘는다. 이들 구단은 물론 하위 리그로 강등된 구단도 해체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것이 유럽 축구가 채택한 ‘승강제’ 효과다. 언젠가 상위 리그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 지역의 자존심과 클럽의 역사를 공유하는 서포터들의 ‘압력’이 존재하는 한 구단의 소유주가 바뀔망정 간판을 내리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동시에 승강제는 소수 클럽의 풍요와 다수 클럽의 빈곤을 유발하는 ‘주범’이다. 그 폐단을 지적하면서 미국처럼 승강제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지만, 지은이는 “아무리 통계를 뒤져도 소수 지배가 축구의 인기나 재미를 떨어뜨렸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반대한다. 승강제가 폐지되면 리그는 ‘고인물’이 된다. 경쟁이 배제되고 의외성은 사라진다. 지금 유럽 축구를 지배하는 소수 클럽의 영구 번영과 그 외 대다수 클럽의 사멸을 부를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한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38라운드를 소화한다. 지난 6일 열린 25라운드에서 만수르의 맨시티를 3-1로 격파하고 1위를 고수한 팀은 빅 클럽이 아니다. 이 팀 선수들의 몸값 총액 5440만파운드는 맨시티가 치른 케빈 더브라위너 한명의 이적료(5400만파운드)와 비슷하다. 지난해 시즌이 끝났을 때 성적은 20개팀 가운데 14위. 이번 시즌 시작 전 구단주는 감독에게 딱 한 가지 당부만 했다. “리그에 잔류하게 해달라.” 도박사들은 이 팀의 우승 확률을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존 가능성과 같은 5000분의 1로 잡았다. ‘꼴찌의 반란’은 더이상 넘치는 비유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이 팀, 레스터시티의 우승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현재 맨시티는 4위, 맨유는 5위, 지난 시즌 챔피언 첼시는 13위에 있다. “돈이면 뭐든 다 되는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이 되고 싶다.” 라니에리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돈의 규칙’을 깨는 의외성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축구를 보겠는가.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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