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윤리
데이비드 레스닉 지음, 양재섭·구미정 옮김
나남·2만4000원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윤리는 ‘가치’를 논한다. 그러니 이 둘은 웬만해선 서로 만날 일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레이먼드 마틴이라는 과학자는 열사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인류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학 기관의 승인을 얻어 인체 실험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치 얘기를 귀띔해줬다. 같은 실험이 나치 시대에 이뤄졌고, 상당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었다고 하니 그걸 활용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마틴은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그 자료를 활용해야 할지, 더디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윤리적 딜레마다. 데이비드 레스닉이 쓴 <과학의 윤리>는 윤리 없는 과학의 위험을 알리면서 윤리 있는 과학의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은 규모가 방대하다. 비용도 많이 들고, 사회적·정치적으로 협동작업을 요하는 경우가 흔하다. 성과가 일상생활 전반에 끼치는 파급력은 크고 직접적이다.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나 실험이 많다 보니 목적과 수단, 결과의 ‘오염’ 가능성도 커졌다. 동물 대상 실험은 인류를 위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게 마련이다. 또 실적에 대한 압박감은 실험 과정이나 결과의 조작, 남의 성과 가로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은이는 다양한 도덕이론과 악행금지, 선행, 자율, 정의, 공리, 신용, 정직과 같은 윤리원칙을 소개한 뒤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윤리적 질문이 제기되면 정보를 수집하고, 대안을 조사·평가한 뒤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다. 결정을 하기 전에는 ‘과학자로서 나는 일반 대중 앞에서 이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공적 책임), ‘나는 이 결정에 책임지며 살 수 있는가’(사적 책임), ‘나는 이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나 전문가의 의견에 의지할 수 있는가’(멘토링)를 자문해 보라고 권한다. 1998년에 영문 초판이 나왔으니, 좀 된 책이긴 하다. 그러나 과학자가 알아야 할 윤리적 문제는 거의 빠짐없이 짚고 있다. 특히 ‘부록’에 들어 있는 50개 가상 사례는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법한 일들로 채워져 흥미롭고 유용하다. 강희철 기자
데이비드 레스닉 지음, 양재섭·구미정 옮김
나남·2만4000원 과학은 ‘사실’을 다루고, 윤리는 ‘가치’를 논한다. 그러니 이 둘은 웬만해선 서로 만날 일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레이먼드 마틴이라는 과학자는 열사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인류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학 기관의 승인을 얻어 인체 실험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치 얘기를 귀띔해줬다. 같은 실험이 나치 시대에 이뤄졌고, 상당히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었다고 하니 그걸 활용해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마틴은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그 자료를 활용해야 할지, 더디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돌파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윤리적 딜레마다. 데이비드 레스닉이 쓴 <과학의 윤리>는 윤리 없는 과학의 위험을 알리면서 윤리 있는 과학의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은 규모가 방대하다. 비용도 많이 들고, 사회적·정치적으로 협동작업을 요하는 경우가 흔하다. 성과가 일상생활 전반에 끼치는 파급력은 크고 직접적이다.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나 실험이 많다 보니 목적과 수단, 결과의 ‘오염’ 가능성도 커졌다. 동물 대상 실험은 인류를 위한다는 숭고한 목적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게 마련이다. 또 실적에 대한 압박감은 실험 과정이나 결과의 조작, 남의 성과 가로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지은이는 다양한 도덕이론과 악행금지, 선행, 자율, 정의, 공리, 신용, 정직과 같은 윤리원칙을 소개한 뒤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윤리적 질문이 제기되면 정보를 수집하고, 대안을 조사·평가한 뒤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라는 것이다. 결정을 하기 전에는 ‘과학자로서 나는 일반 대중 앞에서 이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공적 책임), ‘나는 이 결정에 책임지며 살 수 있는가’(사적 책임), ‘나는 이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나 전문가의 의견에 의지할 수 있는가’(멘토링)를 자문해 보라고 권한다. 1998년에 영문 초판이 나왔으니, 좀 된 책이긴 하다. 그러나 과학자가 알아야 할 윤리적 문제는 거의 빠짐없이 짚고 있다. 특히 ‘부록’에 들어 있는 50개 가상 사례는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법한 일들로 채워져 흥미롭고 유용하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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