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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랑과 예술은 삼키고, 모순과 굴욕은 토했다

등록 2016-04-14 20:28수정 2016-04-14 21:53

나혜석, 운명의 캉캉
박정윤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개화기 조선의 문제적 인간, 나혜석의 삶이 소설로 복원됐다. 가정과 사회에서 왕 노릇 하는 “조선 남성이란 인간들”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처음 공개발언한 신여성, 이혼 위자료로 고작 그림 한 점 값을 받고 양육권도 일방적으로 뺏긴 뒤 ‘이혼고백서’를 발표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그를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박정윤이 6년 동안의 노력 끝에 재생시켰다.

이 책은 나혜석이 활동한 당시와 현대, 두 시간을 배경 삼은 두 이야기가 곱걸린 액자소설이다. 행려사망한 나혜석의 마지막을 밝히고 싶은 윤초이와 나혜석의 삶을 소설로 쓰는 독고완, 윤초이와 독고완의 원고를 읽으면서 조부모와 나혜석의 연을 알게 되는 ‘나’를 통해 근대조선의 연애와 결혼, 예술과 사회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여성은 심한 취급을 당합니다. 연애에 있어서는 창녀 취급을 하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하녀 취급을 합니다. 지식이 깊은 여성이래도 남성의 발밑에 엎드리지 않으면 밟힙니다. 여성이 독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 들어도 낡지 않은 소리다. 100년 전 사람인 나혜석의 말이 진부하게 읽히지 않는 건 남존사상의 여성 비하가 여전히 등등해서다.

시대와 불화하는 예술가의 자세도 충실히 그려졌다. 유학파 출신에 돌올한 화풍으로 주목받았지만 불륜녀, 이혼녀라는 딱지에 화단도 언론도 그를 사갈시했다. 일본은 협력의 대가로 교수 자리와 전시회를 약속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노랑이라는 색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닌, 노랑의 냄새와 질과 맛까지 몽땅 알고 싶어요. 노랑 자체가 돼보고 싶어요.” 여성은 남성의 도구가 아니라 온전한 ‘자체’임을 천명한 근대조선의 이 ‘사상적 혁명가’는 사랑과 예술은 삼키고, 모순과 굴욕은 토했다.

“진취적인 것”은 “순환성을 인정해주어 창작성을 북돋”울 때 나온다는 그의 말은, 잘 알려지지 않은 혁명의 본뜻을 간직하고 있다. 순환, 회전. 남성성과 여성성의 회전력을 상징하는 나혜석의 삶은, 그 힘이 약한 오늘까지도 혁명적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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