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반성은 없다, 계속할 것은 번성뿐

등록 2016-04-21 20:08수정 2016-04-26 14:36

아메리칸 홀리
양헌석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그래도 세상이 아직 안 망하고 있는 건, 독함에는 한계가 있어도 순함에는 한계가 없어서일까. 자본주의라는 “광기, 증오심, 분노가 뒤범벅이 된 이 축제”에도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 제물은 언제나 약자. 약한 자를 인격적, 경제적으로 죽이는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잊지 않는 점이 있다. 자본주의 역시 약속된 하나의 모델이란 점. 약속은 스스로 작동하지 못한다. 사람이 한다. 자본주의란 시스템만큼 구성원을 이해하는 일은 이래서 중요하다. 양헌석의 <아메리칸 홀리>는 그중 강자의 눈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독특한 장편소설이다.

‘나’는 한국의 한 일간지 미국 지사 편집국장이다. 성공만을 위해 더 사납고 또 독해졌다. 미국의 한인사회를 어두운 극장이라고 하면, “중간에 들어와 헤매는 자들의 다리를 거는” 일로 살아남았다. 어느 날 테러를 당한다. 아킬레스건이 잘렸고 성기엔 절단하려던 흔적이 가로로 남았다. 누구 소행인지는 모른다. 이대로 성공은 끝나고 “쉽게” 다리를 걸어 자빠뜨린 이들이 약해진 ‘나’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정신분열이 시작됐고, 목을 맸다.

양헌석. 사진 문학동네 제공
양헌석. 사진 문학동네 제공

분열이 깊어지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굴곡도 가팔라졌다. 기압 차가 클수록 공기의 이동이 세게 비탈지듯 내면에 광풍이 분다. 짚이는 이는 B. 그도 ‘나’가 물어뜯어 제거한 동료 기자다. ‘나’는 “생물학적 일관성”을 따랐고 B는 “인문학적 일관성”을 따랐다. 덩치도 목소리도 ‘나’보다 작고 약했던 그는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뒤를 밟는다. B가 혼자 바다를 보고 있던 절벽에서 그의 목에 칼을 댄다. 절벽 끝으로 몰아, 등을 민다. “나는 절벽 위의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뒤 정신분열이 싹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스스로 절벽 위를 질주해 바다로 뛰어내린 느낌이었다. 바른 태도를 취하려는 그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나의 자의식이기도 했다. B는 무의식 속에서 붙들고 싶던 나의 병든 자아였다.” B를 아예 없애면서 자의식도 아주 버렸다. 반성은 없다. 계속할 것은 번성뿐이다.

‘나’가 사는 뉴욕도 9·11 테러를 당했다. “지리적 형태”가 “남자 성기 모양과 흡사한” 맨해튼엔 월가 같은 “분출 가능한 경제적 자양분”이 가득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아킬레스건”인 빈부 차이는 경제시스템의 급소다. ‘나’의 테러와 9·11을 맞바라보게 둔 작가의 질문. “공포심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내 자의식이 키우고 있는 괴물 탓이다. 입을 열 때마다 청산유수인 당신은 그런 당신이 두렵지 않은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1.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저항의 한복판, 3.5%가 만드는 혁신…결정적 성공 요인은? [.txt] 2.

저항의 한복판, 3.5%가 만드는 혁신…결정적 성공 요인은? [.txt]

너구리랑은 같이 살 수 있다 하겠지, 그런데 곰이랑은? 3.

너구리랑은 같이 살 수 있다 하겠지, 그런데 곰이랑은?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4.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5.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