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문화정치-1980년
광주민중항쟁 ‘현장’의 문화투쟁
천유철 지음/오월의봄·2만3000원
광주민중항쟁 ‘현장’의 문화투쟁
천유철 지음/오월의봄·2만3000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싸고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식 때 ‘제창’하던 노래를 박근혜 정부 들어 ‘합창단 노래’로 바꾸어 따라부르기를 선택에 맡겼다. 행사에 참석한 관료들은 안 부르는 편을 택해 입을 꾹 다물었다. 광주 ‘민중항쟁’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2월에 열린, 항쟁 지도부 중 한 명이던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극 <넋풀이> 삽입곡이었다. 항쟁공간의 윤상원은 29살.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의 리더로 명망가, 지도자가 예비검속된 상태에서 떠오른 ‘젊은 지도자’였다. 그는 노동현장에서 단련된 야학조직을 항쟁기 유인물 제작·배포 조직으로 전환하여 <투사회보> 1~9호를 제작했다. 투사회보는 신문 발행이 중단되고 외부와 차단돼 눈·귀를 잃은 광주시민한테 훌륭한 대안언론이었다.
“지도부가 없는 현실에서 선전선동은 생명과 같은 거야. 다시 싸울 수 있게 알리고 또 알려야 된단 말이야. 전두환이는 총칼보다 투사회보 한 장을 더 무서워해.”
윤상원은 5월27일 새벽 청년, 고교생, 여성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도청에 남아 전두환 군부의 하수로 전락한 공수부대에 맞서다 죽었다. 영혼결혼식에서 그의 아내가 된 박기순은 들불야학 창립자. 대학에서 무기정학을 당한 뒤 공장에 ‘위장취업’해 낮엔 공장에서, 밤엔 야학에서 노동자와 함께한 노동운동가로 윤상원의 동지였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그는 항쟁 발발 전 연탄가스로 죽었다.
<오월의 문화정치>는 이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펼쳐진 문화투쟁을 총정리했다. 열흘 동안 거기서 생산된 시, 노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유인물, 구호, 표어, 음향 등을 모두 모아 분석함으로써 항쟁공간에서 누가 어떤 문장과 노래, 어떤 유인물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어떻게 시민들과 공유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헬기에서 살포되는 ‘삐라’와 확성기 소리와 대비되는 지상의 문화현장은 생생하여 읽는 이를 부르르 떨게 한다.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애국가’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도청광장에 모여 항쟁을 다짐하던 때, 공수부대가 발포를 시작한 때, 총에, 대검에, 곤봉에 죽은 이들의 장례식에서도 불리는 등 항쟁기 내내 장중하게 울렸다. 시민과 시민군을 하나로 묶고 항쟁이 애국과 의거임을, 진압군과 군부의 행위가 가짜 애국이고 폭거임을 분명히 했다. 애국가만큼이나 많이 불린 ‘아리랑’은 광주항쟁의 민중성을 증거한다고 지은이는 본다.
그동안 연구가 항쟁 뒤의 ‘기억투쟁’ 방식으로 항쟁을 조명하거나 재해석한 데 비해, 이 책은 문화적인 측면을 조명함으로써 5·18 미시사와 함께 항쟁의 또다른 층위를 복원해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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