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여자
정새난슬 지음/콘텐츠하다·1만3800원
정새난슬 지음/콘텐츠하다·1만3800원
태어나 보니 아빠가 정태춘이고 엄마가 박은옥인 여자, 영국에서 조각을 공부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싱어송라이터 정새난슬의 첫 산문집이다. 이달 처음 나온 그의 정규앨범 <다 큰 여자>에 수록된 ‘다 큰 여자’ 가사대로 “입 벌린 상처로 노래를” 부르는 “다 큰 여자”의 문장은 “일어나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격렬하고 조용”한 춤.
‘새로 태어난 슬기로운 아이’란 뜻의 희소한 이름 ‘새난슬’을 준 유명 아티스트의 딸이자 전방위 예술가, 페미니스트로서 성장담이 새겨졌다. 그의 몸을 덮은 타투처럼. 이혼한 뒤 딸과 살고, 큰 뱀과 해골과 하트 문신을 한 그는 이 사회에서 아무래도 튄다. “생에 쓰다 갈 그릇”인 ‘내’ 몸에 “무늬를 넣었다는 이유로 경험한 폭력적인 발언과 시선”(쑥덕거림, 가래침 등)은 “일종의 정치적 입장을 갖게 만들었다.” 페미니즘은 “설명할 수 없던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힘을 줬”으며 “알면 알수록 더 넓어지는 세계”의 “새로운 인식 방법”이었다.
삶이 버거워진 까닭이리라. “피로함을 끝낼 거대한 마침표”로서 죽음이 간절했나 보다. 우울증으로 결혼생활 중 자살을 시도했다. 산후·육아 우울증에다 남편의 가부장성을 견딜 수 없었다. 자살 기도는 “가족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지만 공개적으로 이 경험을 얘기하는 건 “그 일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도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삶이 ‘늘’ 아름답진 않”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순간’이” 온다. 비는 반드시 그친다. 게다가 뭔가를 살리고 그친다.
그가 살아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딸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시집이나 가겠냐”는 참견을 듣던 문신한 여자는 결혼도 했고 엄마도 됐다. 딸의 뺨 같은 “보드라운 핑크”를, 더 많은 색을 맞이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극단까지 나아갔던 어둠인 “애도의 검정”을 추스른다. “다시 시작한다.” “제일 사랑스럽고 바보 같은 핑크부터 공략.” <다 큰 여자>는 에세이에다 시, 그림, 음악 이야기를 분홍빛 흥분 상태로 왕창 그려넣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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