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
안도현 지음/삼인·1만3500원
안도현 지음/삼인·1만3500원
“시 한 편 쓰지 않고 천 그릇도 넘게 밥을 먹었다. ‘마감’이 없는 저녁은 호사롭고 쓸쓸하였다.”
현 정권 아래 시를 쓰지 않겠노라고 선언했건만 “하룻밤에 백 편이라도 시를 꺼낼 것 같고 또 꺼내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뒤척인다. 시인을 핍박하는 시대, “비유마저 덧없는, 참담한 광기의 시절”에 시인은 시 대신 14년 동안 써온 산문을 벼려 내놓았다.
시심을 비워버린 듯 무심한 제목의 <그런 일>은 안도현 시인의 “흔적들”이다. “끝내 버리지 못한 나 자신”이며, “한 줄 한 줄이 전전긍긍”이었던 “지금, 이곳에 나를 있게 해 준 말들”이다. 문학소년에서 전교조 해직교사로, 전업 문인에서 대학의 문학교수로, 시어로는 소상히 알 수 없었던, 시인을 키워낸 50여년의 성장담이 담겼다.
글의 여정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연어를 닮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북 전주 집필실에서 그가 태어난 경북 예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내성천의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한 마리의 어린 물고기였다.” 여름 내내 멱을 감은 그곳은 시심의 근원. 1981년 등단시 <낙동강>을 해설 삼은 고향 이야기는 아련하기만 한데, 어쩔 수 없이 4대강 공사에 망가진 현실과 만난다. ‘나는 도시로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고 계집애/ 고 계집애는 실처럼 자꾸 나를 휘감아왔다’(<풍산국민학교> 중에서) 6학년 때 고향을 떠난 ‘탕아’에게 ‘고 계집애’는 그리운 무엇이었다. “그리운 게 많았으므로” 시인 되기를 갈망했다. 청소년기엔 “연탄 아궁이 불꽃이 키웠다.”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연탄은 대구 ‘유학’ 시절 애환의 다른 이름이었다.
글의 많은 부분은 시학론에 닿아 있다. 그는 “시간을 녹여 쓴 흔적이 없는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은 시”를 경계한다. 시란 “보이지 않는 헛것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날선 말들의 모진 현실을 이완하려면 “은유적 대화를 회복하라”고, “생의 특별한 감동을 원한다면 시를 좀 읽을 일”이라고 권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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