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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그만하시죠, 이건 성폭력이에요”

등록 2016-06-02 20:18수정 2016-06-03 14:35

악어 프로젝트
토마 마티외 글·그림, 맹슬기 옮김
푸른지식/1만5000원
프랑스 만화가 토마 마티외의 <악어 프로젝트>는 남자를 다 악어로 그린(지은이도 남자다) 그래픽노블이다. 일상에 퍼져 있는 여성 대상 성폭력을 50여개의 에피소드로 담았다. 남자(악어)가 여자에게 하는 ‘성적 망동’을 다큐처럼 적나라하게 썼다.

“나랑 자고 싶은 게 아니면 왜 옷을 이렇게 입은 건데?” “예쁘지도 않은 게!” “걸레, 뚱보.” “치마 길이 봤어? 저런 여직원을 채용하면 생산성 향상에 매우 도움이 되지.” “싫다고 말했잖아. 그런데도 넌 계속했지. 내 의견은 무시하고./ 내가 너를 강간이라도 했다는 거야? 그럼 원하지 않는다고 더 분명하게 말했어야지!”

여성 성폭력의 ‘체험판’ 같지만, 이게 실재다. 남자를 악어로 표현하고 내레이션은 여자의 목소리로 써서, 남녀 불문 모든 독자는 악어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피해자 입장으로 성폭력을 간접체험하게 된다. 모든 남자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게 아니라, 여자에겐 ‘위험한 남자’와 ‘안전한 남자’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독자를 이끈다. 늪을 안전하게 건너야 하는 처지에서 악어는 다 똑같이 생겼고, 좋은 악어와 나쁜 악어가 따로 없는 것처럼.

책은 성폭력의 양상을 다양하게 재연한다. 에피소드의 배경은 집, 학교, 직장, 길거리, 도로, 슈퍼마켓, 식당, 관광지 등 하고많다. 성폭력 발생 장소가 그만큼 광범위하다.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멸시와 폭력도 다뤘다. 재밌는 부분은 악어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아기가 자라면서 악어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성폭력 성향은 애초부터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학습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장치일 것이다. 성장기 내내 남성에게 ‘포식자 교육’을 시키는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책은 지목한다.

성폭력에 대응하는 매뉴얼도 세세하게 실었다. ‘길거리 성폭력’인 휘파람, 저속한 말, 성적인 제안, 몸을 더듬는 시선 등에 대처하는 방법부터 소개된다. 무시하는 것도 선택지에 속하지만, 이런 성폭력에 적극 대응하는 경험이 쌓여야 더 큰 위험이 닥쳤을 때도 제대로 응수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반복해서 얘기하고(“그만하세요. 그건 성폭력이에요.”) 신체언어(똑바로 보기, 웃지 않기, 단호한 태도, 큰 목소리 등)를 분명히 보이는 게 도움이 된다.

<악어 프로젝트>(2014) 이전에도 남성을 성적 포식자로 그린 작품이 있었다. 그래픽노블의 고전 <오딜과 악어들>(1984, 프랑스)이다. <악어 프로젝트>는 2014년 11월25일 프랑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전시회에 초청됐다가 취소됐다. 이 책이 저속하고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이 한편에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모든 이의 머릿속을 망치고 있다는 성폭력·성차별적 발상은 40년 전 세계 최초로 여성부가 설치된 프랑스에서도 여전한 듯하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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