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라고 하면 적응에 성공한 자만 생존한다는 ‘적자생존’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는 진화론에서 ‘경쟁’만 끄집어내는 셈인데, 사물의 한쪽만 본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실제 올해 출간 40주년을 맞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도 진화의 한 면만 유독 커 보이게 했다. 내용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 제목 때문이다. 협력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30주년 개정판에서 도킨스는 제목 선정이 부적절했다고 밝혔다. 또 자신의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은 ‘유전자’이지 ‘이기적’이 아니며 이 책은 이타주의(협동)를 강조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수유너머엔(N)의 ‘더불어 고전 읽기’ 시리즈 셋째 권 <진화와 협력, 고전으로 생각하다>는 청소년들이 진화론을 구석구석 더 잘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경쟁과 협동이라는 진화의 두 갈래를 나란히 이해시키는데, 한 주제에 관해 여러 책을 비교하며 읽는 신토피컬(syntopical) 독서법이 적용됐다. <이기적 유전자> <협력의 진화>(로버트 액설로드) <타인에게로>(엘리엇 소버, 데이비드 슬로안 윌슨) <경쟁의 종말>(로버트 프랭크) <공생자 행성>(린 마굴리스)이 여기에 동원된다. 하나같이 진화론의 명저다.
어려워 보이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시작만 한다면 워터파크 미끄럼틀처럼 시원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저 다섯 권을 하나하나 주제로 삼는 다섯 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엔 책을 소개하고 비판적 읽기를 유도하는 도우미가 있다. 이 책이 보탬이 되는 부분은 모든 챕터가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한 필수 기착지가 되도록 짜였다는 점이다.
유전자가 혈연에 국한된 협동을 한다는 도킨스의 견해를 살펴보고(1장), 그에 대한 반박으로 피를 나누지 않은 관계의 협력 가능성을 밝힌 연구를 알아본다(2장). 여기까진 협동이 자기 이익에 부합할 때 가능하다는 견해들이다. 이어서, 내게 도움이 안 돼도 동료를 돕는 사막가위개미의 예를 통해 사심 없는 협력의 근거를 보충한(3장) 뒤 진화에서 경쟁의 역할을 정리해준다(4장). 경쟁이 도약의 발판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나, 특정 조건에서는 필연적으로 무리 전체에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연구가 소개된다.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은, 공멸을 부르는 경쟁은 피하고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생명이 선택한 ‘공생 진화’를 보여준다. 생명은 더불어 사는 공생으로 진화, 즉 변화하며 더 큰 혁신을 이뤘다. “혈연관계도 없고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없는 개체”와도 돕고 산다는 자세로 말이다.
석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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