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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건강한 에로티시즘과 일상의 해학

등록 2016-07-07 19:48수정 2016-07-07 20:12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음/문학동네·8000원

2012년 4월 인터뷰차 만났을 때 김민정(사진)은 자신의 세번째 시집 제목이 ‘영신사’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었다. 영신사는 출판사 편집자이기도 한 그가 거래하는 인쇄소 이름이다. 그가 예고했던 세번째 시집이 마침내 나왔다. 제작처는 역시 영신사지만 시집 제목은 예고와는 달라졌다.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의 폐쇄적이면서도 기괴한 에로티시즘으로 출발한 김민정은 두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2009)에서 타자를 향해 열린 태도로 나아갔다. 그의 세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은 거침없고 해학적인 어조로 생활과 언어의 속살을 헤집는다.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톰슨 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내 위에 올라탄 네가/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찰싹 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즉흥이다”(‘비 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부분)

“혹시 냉동고에 꽁꽁 얼린 난자완스 있으세요?/ 있으면 그것부터 버리세요/ 약기운에 자다 깨서 그거 데우다/ 솥뚜껑까지 태워먹은 게 나거든요/ 온 집안이 연기로 뒤덮였죠/ 소방차는 출동했죠/ 나는 팬티에 노브라 차림이었죠/ 맨손으로 시꺼먼 솥을 집었다가 놓쳤는데/ 오른 발등뼈가 깨가 됐지 뭐예요”(‘자기는 너를 읽는다’ 부분)

팬티에 노브라, 방귀 그리고 일요일 오후의 사랑은 얼핏 첫 시집의 에로티시즘과 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거의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이번 시집의 에로티시즘은 한결 구체적·일상적이며,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기보다는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나는 건강한 솔직함을 특징으로 삼는다. ‘상강’과 ‘생강’과 ‘생각’ 세 낱말의 유사성을 활용한 말장난을 선보인 시 ‘상강’은 언어의 질감에 민감한 이 편집자 시인의 직업벽을 내비친다.

“더러 너의 거기를 쏙 빼닮은 생강/ 내 사랑하던 두더지가 입을 삐죽하며/ 알은척을 해오기도 했다 의외로/ 작으면 작은 대로 감칠맛이 있어/ 원숭이들 등 긁듯 살살 훑다보면/ 곰과 맞짱을 떠야 하는 밤도 생겨났다// (…) // 못생긴 건 둘째 치고서라도 헐벗었기에 너는/ 생강/ 모든 열매 중에/ 가장 착하게 똑 부러져버릴 줄 아는/ 생각”(‘상강’ 부분)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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