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70점, 88점, 90점….” 1970~80년대 미스코리아 대회 텔레비전 중계는 연말 가수상 시상식과 함께 전 국민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모인 시청자들도 심사위원들과 함께 여성의 몸에 점수를 매기곤 했습니다.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비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미스코리아 대회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고 합니다. 1957년부터 2016년까지 대회의 역사, 진·선·미 등을 차지했던 인물들의 인터뷰와 당시 신문 기사들을 엮어낸 기념 책도 출간되었습니다. 수영복 심사 장면 사진이 실렸고, 역대 미스코리아 진의 신체 변화를 수치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축사를 쓴 분들은 당시 미인 선발대회가 고단한 서민 삶에 위로를 주었다고 추억했지만, 여성 몸을 측정한 기록을 보는 일은 여전히 씁쓸하고 민망하군요.
여성 신체에 점수를 매겨 평가하고 한 줄로 세우는 미인 선발대회를 반대하는 이들이 많아져서일까요. 이제 ‘미스코리아’는 예전처럼 크게 눈길을 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2002년 지상파 중계가 30년 만에 사라진 이유가 가장 크겠지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로 미인 선발대회에 맞불을 놓은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웹툰에서 보이는 여성 캐릭터의 선정적인 모습이나 어린 아이돌 걸그룹 가수들마저 성적 대상으로 삼고 자극하는 요즘 경향을 보면, 그 시절보다 일상의 성 상품화가 훨씬 심각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이제는 미스코리아 진이 대통령 앞에서 큰절을 하는 일 따위는 없어지고, 미인 선발대회 지상파 중계도 폐지되었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은 바뀐 게 없구나, 한숨 쉬게 됩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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