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재런 러니어 지음, 노승영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디지털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채색한 그림은 한둘이 아니다.
승용차나 트럭 운전은 소프트웨어가 ‘처리’한다. 옷과 가재도구는 3D 프린터가 찍어내고, 아이와 노인은 로봇이 돌본다. 진료와 수술 따위는 ‘알파고’에서 더 진화한 인공지능의 몫이다. 문학도, 뉴스 보도도 컴퓨터가 해낸다. 기술 발달 덕분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공짜이거나 거의 공짜다. 그러니 돈·일자리·빈부격차·노후계획 따위도 무의미해지거나 전혀 필요가 없게 된다?
“나는 이렇게 반듯한 그림이 전개되리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상황이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아마도 우리는 ‘초실업 시대’에 들어설 것이며, 그로 인해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재런 러니어(56)가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보여주는 “가능한 미래에 대한 스케치”는 한마디로 암울하다. 가령 ‘3D 프린팅 전도사’인 에이드리언 보여 같은 사람들은 이 만능 프린터의 대중화로 모두가 각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돼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라고 ‘선동’하고 있지만, 러니어가 보기에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혜택’이 현실화한다면, 우리 앞에 펼쳐질 광경은 지상 천국이 아니라 일터에서 대규모로 쫓겨나는 노동자들의 행렬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쓸모없어지는 현상이 물결처럼 밀려올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러니어는 누구인가? 그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디지털 문명의 ‘창세기’에 실리콘 밸리에 발을 디딘 원주민으로, 가상 현실(VR, Virtual Reality)을 처음 고안하고 상용화했다. 영화로 유명해진 ‘아바타’의 창조자다. 연구용 차세대 전산망 ‘인터넷2’의 개발에도 참여했고, 지금은 ‘실리콘 밸리의 선지자’로 불린다. 그는 이 책에서 ‘내부자’만이 지닐 수 있는 풍부한 지식, 자기 분야를 객관화하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단순한 디스토피아론 이상을 보여준다.
재런 러니어는 책에서 사용자들을 공짜 소프트웨어로 꾀어 정보를 수집한 뒤 빅 데이터로 가공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한 대표적 ‘세이렌 서버’로 구글을 지목하고 있다. 구글의 사훈은, 역설적으로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다. 사진은 미국에서 벌어진 반구글 시위에 등장한 손팻말. <한겨레> 자료사진
자칭 ‘소심한 인본주의자’인 그의 눈에도 암담한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사람들은 구글이 제공하는 갖가지 공짜 서비스에 열광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업데이트에 ‘강박적으로’ 몰두한다. 지피에스(GPS)와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으로는 끊임없이 거대 컴퓨터에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중독’ 증상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선원들을 아름다운 노래로 꾀어 난파시켰다는 세이렌처럼 구글과 페이스북과 그 비슷한 거대 컴퓨팅 기업들-러니어가 ‘세이렌 서버’라고 이름 붙인-은 사람들을 꾀어 불러모으고, 그들이 시시각각 무심코 제공하는 공짜 정보를 빅 데이터로 가공해 사상 초유의 부를 쌓아가고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이 10억달러에 인수한 인스타그램의 가치는 전적으로 이용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구글의 번역 서비스는 ‘진짜’ 사람들이 번역한 수많은 예문의 집합이다.
디지털 문명의 초기 이상가들은 최대한의 개방과 정보 공유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과실은 ‘세이렌 서버’들이 차지했다. 이처럼 기대가 어그러진 건 “네트워크에선 가장 강력한 컴퓨터를 가진 자가 반드시 정보 우위를 차지”하고, 그것이 곧 부와 권력이 된다는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자멸적 방안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세이렌 서버 같은 승자의 독식이 가속화하고, 미디어에서 의료·제조업에 이르는 모든 산업이 공동화되고, 대량 실업의 결과로 중산층이 붕괴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경제가 성장을 멈추게 돼 있다. “자본주의는 고객이 될 만큼 성공한 사람들이 있어야 돌아간다.”
러니어는 ‘지속 가능한 정보 경제’를 위한 대안으로 ‘인본주의 컴퓨팅’을 말한다. 빅 데이터의 원재료인 정보의 ‘출처’(provenance)에 가치를 매기고, 그에 상응하는 ‘진짜’ 화폐를 지불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정보의 출처는 행복추구권이나 참정권처럼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제공한 수만번의 사소한 기여에 대해 “무수히 많고 다양한 미소 저작권료”를 ‘보편적 전자지불’ 시스템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입지가 불안한 “중산층의 금전적 안정성에 더 평탄한 길”이 열리고, 경제가 돌아가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애플이 개척한 ‘앱 경제’는 비록 작고 미흡한 규모지만,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을 관통하는 화두는 인간의 미래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계가 자율적 존재로 인식될 만큼 고도로 정교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까.”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