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종의 탄생 - 인종적 사유의 역사
마이클 키벅 지음, 이효석 옮김/현암사·1만6000원
마르코 폴로가 구술했다는 <동방견문록>에서 중국인은 ‘백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18세기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에도 일본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의 피부는 분명 흰색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슬그머니 ‘노란’(yellow)색으로 대체된다. 여행기, 과학 담론은 물론 예술 작품들에서도 동아시아인은 황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이클 키벅(54·사진) 국립 대만대 교수는 2011년에 펴낸 저작 <황인종의 탄생: 인종적 사유의 역사>에서 한때는 ‘백인’이던 동아시아인들이 어떻게, 왜 ‘황인’으로 분류되게 되었는지 그 연원과 내력을 끈질기게 파헤친다.
동아시아인들의 얼굴에 ‘노란색’ 딱지를 붙인 첫 ‘용의자’로는 저 유명한 칼 폰 린네(1707~78)가 지목된다. 그는 아시아인의 피부색을 어둡다는 뜻의 라틴어 ‘푸스쿠스’(fuscus)로 표현했다가 1758~9년 간행된 <자연의 체계> 제10판에서는 ‘루리두스’(luridus·연황색, 창백한)로 구체화했다. 린네가 칠해놓은 색깔을 넘어 ‘몽고성’(mongolianness)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낙인을 찍은 이는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1752~1840)다.
비교해부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이 독일 동물학자는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을 ‘연노랑’(gilvus)로 규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유럽인들에게 불길하고 위협적인 이름들, 즉 아틸라와 칭기즈칸, 티무르를 즉각 연상시키는 몽고를 끌어다 붙인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동아시아를 다녀간 여행자들이 현지인들을 황인으로 지칭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황인종’은 19세기 인류학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노란색 낙인에는 차별과 배타, 폭력이 응축돼 있다. 세상에 순백인, 순흑인이 없는 것처럼 ‘샛노란’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서구인들은 피부색을 ‘창조’하고, 몽고눈·몽고점·몽고증(다운증후군)을 새로이 ‘발명’해 황인종을 비정상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이민이 몰려들자 인구과잉, 이교, 경제적 경쟁, 정치 사회적 퇴보 등 온갖 부정적 의미를 함축한 ‘황화’(yellow peril) 경보로 대응한 것도 그들이다. 백인 아래 황인-흑인이 놓이는 ‘위계 질서’가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되는지를 가늠해보면 이 ‘인종적 색깔론’의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지은이는 한국어판을 위해 따로 쓴 서문에서 묻고 있다. “황색이라는 차별적 (…) 단어를 그만 사용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고. 348쪽 분량 책에서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두툼한 미주와 참고문헌이 그의 주장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다.
강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