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과 영광 -오이코노미아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학을 향하여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정문영 옮김/새물결·3만1000원
푸코, 라캉, 데리다, 들뢰즈, 가타리, 바디우 같은 이름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어렵다는 것이다. 두뇌의 아르피엠을 최고로 높여도 난독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그 이름들에 절대 빠뜨릴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조르조 아감벤(74·사진)이다.
주저인 ‘호모 사케르’ 시리즈의 제1권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부터 참신하다, 난해하다는 평을 동시에 얻었던 이 베네치아건축대학 교수의 2008년 작 <왕국과 영광>이 번역돼 나왔다.
6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에는 바울에서 푸코, 단테부터 하버마스에 이르는 무수한 인용이 등장하지만, 이 모두를 단단히 꿰고 있는 키워드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다. 그리스어로 원래 가정·집안 경영을 뜻하던 이 단어는 기독교 신학에 차용되면서 ‘신의 섭리에 의한 통치’라는 새로운 뜻을 얻게 된다. 성령-성부-성자의 삼위일체, 신학적 오이코노미아가 21세기 현대 정치의 삼권분립에 이르기까지 서구 역사에서 어떻게 ‘변주’돼 왔는지, 그 계보를 좇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아감벤은 적고 있다.
“이 연구는 서양에서 권력이 어떤 경로를 거쳐 왜 ‘오이코노미아’ 형태, 다시 말해 인간들에 대한 통치라는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애초 카를 슈미트의 문제의식, 즉 근대 정치는 신학이 세속화한 것이라는 정의에 동조하는 듯하던 아감벤은 이집트 학자 야스만의 발상을 빌려와 슈미트의 생각을 뒤집는다. “신학의 (…) 중요한 개념은 모두 정치적 개념이 신학화된 것”이라고. 그러니 신학이 곧 정치학이며, 근대 이후의 정치 또한 여전히 신학적 ‘오이코노미아’의 패러다임 위에 놓여 있는 존재다.
근대 관료제는 신학의 위계 또는 ‘천사학’에서 왔다. 미디어와 의식·의전 따위 ‘정치적 스펙터클’은 신학적 오이코노미아의 디엔에이를 드러낸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할렐루야’는 1938년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때 불린 ‘하나의 제국, 하나의 인민, 하나의 총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환호송이다. 고대 로마시대 개선자에게 주던 월계관은 콘스탄티누스 찬가를 거쳐 현대 정치의 온갖 장면들에서도 문득문득 출몰한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는 (…) 모든 상상을 초월한 미디어에 의해 증가되고 흩뿌려지는 환호송에 기반한 민주주의”이고,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신학적 유산의 수탁자이다”. 책 제목 ‘왕국과 영광’은 과거와 현재, 정신과 세속 권력의 핵심적 형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책은 3천년의 시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권력의 계보를 훑고, 해석한다. 옮긴이는 “아감벤의 지적 고투를 통해 서구 사상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 책을 참고 견딘 소수 독자에게만 돌아갈 특전이 될 것 같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사진 새물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