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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뉴턴에서 크릭까지 ‘인문학의 눈’으로 읽은 과학, 과학책

등록 2016-09-22 19:34수정 2016-09-22 20:16

저명한 과학·철학 저작 25권 리뷰
“과학공부 목표는 지식쌓기 아니라
사회와 자신의 삶 성찰 계기여야”
과학을 읽다
정인경 지음/여문책·1만7800원

<총, 균, 쇠>. ‘퓰리처상’을 받은 재레드 다이아몬드(79)의 대표 저작. 번역본이 나오고도 십수 년이 지난 2013년, 서울대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본 책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새삼스럽게 ‘대박’이 났다. 그 뒤로 한 1년간 이 책은 각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지금도 월 500부 정도는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문학사상사 관계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팔려나간 <총, 균, 쇠>는 어떻게 됐을까?

<과학을 읽다>를 쓴 정인경씨의 경험담이다.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등은 좋은 책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기는 어려운 책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편집자들이 말하는 과학 베스트셀러는 ‘절대로 읽지 않을(못할) 책’이지만 집 책꽂이에 꽂아두는 책들이었다.”

서재 장식에 좋은 책, 그러나 읽지 않는(을) 책, 그럼에도 읽으면 좋을 책들을 나름의 안목으로 고르고 읽은 뒤 정씨는 이 책 <과학을 읽다>를 썼다.

예를 들어 그가 읽은 <총, 균, 쇠>는 이런 책이다. “무엇이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켰고 무엇이 역사의 진보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진지하게 다시 묻고 있는 것이다. 그의 책은 역사가 진보한다거나 역사에 법칙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 지금까지 서양 역사학이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목적을 추구했다면 <총, 균, 쇠>는 ‘그래 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인류사 전체를 종횡하는 이 거대서사를 통해 단순히 ‘우리의 과거는 이랬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핵확산,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인구 증가, 전염병, 생태계 파괴 등 과학이 풀어야 할 인간 존재의 가장 절박한 문제들을 적시하고, 해결의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즉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과학적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삶의 목표와 태도도 함께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즘 실험을 하고 있는 뉴턴. 그는 이 유명한 실험을 통해 빛은 백색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로써 빛은 순수하고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는 당시 과학계의 인식과 일반 상식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문책 제공
프리즘 실험을 하고 있는 뉴턴. 그는 이 유명한 실험을 통해 빛은 백색이 아니라 무지개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진 ‘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로써 빛은 순수하고 단순한 것이어야 한다는 당시 과학계의 인식과 일반 상식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문책 제공
과학책에서 이런 ‘본령’을 간파하지 못하는 까닭, 과학책이 ‘읽고는 싶은데 재미 없는 책’이 되어버린 연유는 무엇보다 책 자체가 독자들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어 어렵고 지루하고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학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외워야 할 지식의 대상으로 여기는 독자들의 독서 습관 탓도 있다.

“한국에서 ‘과학기술하기’는 과학과 과학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책 읽기는 여느 인문학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정씨는 스스로 설정한 이 가이드라인을 따라 예의 편집자 모임에서 거론된 책들은 물론이고, 뉴턴의 <프린키피아>,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 등을 읽어낸다.

가령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란 알고 보면 우주에서 모든 장소는 공평하다는 것, 우주를 관측하기에 더 좋은 좌표계 같은 특권·특전은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빛의 속성과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눈에 바늘을 집어넣는 위험까지 기꺼이 감수했던 뉴턴은 마침내 중력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형이상학 극복의 길을 열었고, 다윈은 발생 단계에서 개와 흡사한 인간을 지구상에서 유일하고 완벽한 창조물로 추켜세우는 일부의 행위가 얼마나 오만한 착각인지를 일깨웠다. 크릭은 암세포가 자신을 쓰러뜨린 그날까지 외부 세계는 우리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가설을 사실로 입증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과학책만 ‘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 목록엔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조지 오웰과 유발 하라리와 프리모 레비도 들어 있다. 과학책까지 합쳐 모두 25권을 요약하고 해제하고 설명한다. 그래서 책 제목은 <과학책을 읽다>가 될 수 없었다. 저자가 강의하는 고려대 대학원 학생 아홉 명과 함께 읽고 토론한 수업 내용이 바탕이 됐다. 그 중 한 명의 수강후기다.

“‘과학학 과제 연구’라는 강의 제목에서 당연히 과학사, 과학철학 등 ‘과학학’으로 통칭되는 학문들의 기초를 배울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산산조각 났다. 굉장한 혼란에 빠졌다. 과연 이 수업을 들어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 학기의 중반부가 끝난 지금은 이 수업을 선택한 데 일말의 후회도 없다. 인류의 기원부터 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부분을 다루면서 나는 과학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나아가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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